[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봄비가 먼지잼으로 날린다. 삼월의 첫날을 간절곶에서 맞는다. 103주년이 되는 삼일절이다. 일렁일렁 푸른 바닷물이 맑고 평화롭다. 날씨마저 포근하다. 이 바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러져 오늘을 이루었는가.

전설바윗길을 걸어 대왕암에 이르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다. 대한민국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이 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문무왕과 왕비의 유골을 바위에 묻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에서 잠시 예와 오늘을 본다. 기암과 괴석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이 장엄하다. 골골이 스며 있는 오랜 세월의 흔적, 역사를 읽는다.

육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기록에 의하면. 대왕암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로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동쪽의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드나들고 안쪽으로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운데에 남북으로 길이 3.7미터, 높이 1.45미터, 너비 2.6미터의 암석 밑에 유골이 놓여 있다고 전한다. 저 바위 어느 틈새에 해룡이 자리하고 있을까 짚어본다.

사방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은 파도에 흔들리는 섬나라다. 예로부터 대륙으로의 진출은 버릴 수 없는 열망이요 꿈일 거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침략의 야욕을 우리에게 드러내었던가. 남쪽 바다를 피로 물들였던 임진왜란, 그 이전 신라 시대에도 끊임없이 검은 야심이 모래톱을 넘실거렸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의 꿈은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문무왕은 이를 간파하고 지금까지 대왕암에 자리를 틀고 앉아 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문무왕이 어떤 사람인가. 우리 진천에서 태어난 김유신과 연이 닿아 있어 그런지 남다른 느낌이 든다. 그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법민이다. 무열왕의 비가 된 어머니 문희의 일화 - 언니인 보희의 꿈을 사고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매준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 되고 있다. 법민은 아버지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신라 30대 왕위를 계승하고 삼국통일을 완성한다. 문文, 무武를 겸비한 왕이다. 영특하고 지략이 빼어났다. 백제 저항군, 당나라 군대를 축출한 공을 높이 꼽는다.

그가 대업을 완성하기까지는 거저 된 게 아니다. 차근차근 준비된 왕임을 알 수 있다. 진덕여왕 당시 당나라에 사신으로 머물며 실정을 익혔고, 백제를 물리칠 때에도 전장에 참여하여 소정방과 함께 전공을 세웠다. 태종무열왕 대에 이러러 파진찬으로, 병부령을 거쳐 태자로 봉해졌다. 그 과정을 보면 외교, 군사적 실무를 몸으로 익히고 왕위를 이어받았기에 큰일을 무리 없이 이루지 않았나 싶다. 준비된 인물만이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 할 수 있다.

삼일절날 대왕암에 이르러 푸르고 너른 바다를 보며 오늘을 바라본다. 아무런 이권 없이 내 재산, 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민심, 독립운동가들의 정신, 죽어서도 바다에 용으로 남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신라 문무왕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치마에 돌멩이 하나라도 담아 적을 물리치는데 보태려 했던 여인들, 그들이 진정 바라는 대통령은 어떤 상인가.

3월 9일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진정 믿고 맡겨도 될 인물은 누구인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국민, 민심을 팔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었다. 속 보이는 명분을 들고 이리 쏠리고 저리 붙는다. 순전히 자신의 입지를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밉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내 주권은 꼭 행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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