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랍비 요하난은 유태 민족이 사상 최대의 위기에 부닥쳤을 때 크게 활약한 사람이다. A. D 70년에 로마인들이 유태의 성전을 파괴하고 유태인을 절멸(絶滅)시키려고 했을 때 요하난은 온건한 태도로 맞서려고 했다. 그래서 로마인들에게 격렬하게 항쟁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 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요하난은 유태민족이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로마의 실력자인 사령관과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당시 유태인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벽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출입이 전혀 불가능 했다. 요하난은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우선 거짓으로 환자 노릇을 했다. 그는 유명한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이윽고 그가 소생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퍼지고 얼마 뒤에는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자들은 그를 관속에 넣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에 시체를 성 밖에 매장하려 했다.

그런데 반대파의 경비병들은 요하난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칼로 시체를 찔러 보겠다고 말했다. 유태인들은 절대로 시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시체를 직접 보고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관 위에서 칼로 찌르려 했다. 제자들은 돌아가신 분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로마군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로마군이 있는 곳에 이르자, 로마병 역시 칼로 관을 찔러 보겠다고 하며 칼을 뽑아들었다. 제자들은 필사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칼로 관을 찌르겠는가? 더욱이 우리들은 무장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여 드디어 전선의 후방까지 나가는데 성공했다. 

관 속에서 나온 요하난은 사령관을 만나고 싶다고 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로마의 사령관 앞에 나가자, 그는 사령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당신께 로마 황제에 대하는 것과 같은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령관은 로마의 황제를 모욕했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요하난은 "내 말을 믿으시오. 당신은 틀림없이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사령관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당신의 말은 이해하겠소. 그런데 당신이 내게 하려는 말이 무엇이오."

요하난이 말했다. "네, 꼭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 경우 당신이라면 어떤 부탁을 하겠는가? 잘 생각해 보라. 요하난은 이런 부탁을 했다. "학교를 하나만 만들어 주십시오. 교실이 하나뿐이어도 좋습니다. 10명의 랍비가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주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학교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십시오." 

요하난은 조만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점령되어 파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가옥이 파괴되고 많은 유태인들이 학살당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만 하나 있으면 유태인의 전통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요하난의 부탁은 대단한 청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시원스럽게 "좋소, 약속하지요."라고 말했다. 로마의 황제가 죽자 그 사령관이 황제가 되었다. 황제는 로마군에게 "그 작은 학교만은 남겨 두라."고 명령했다. 

그때 그 작은 학교에 남아 있던 학자들이 유태인의 지식과 전통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 유태인의 생활양식도 그 학교가 지켜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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