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대학 선배 중에 심재훈 선배님이 계시다. 대기업에 근무하셨던 분이신데 퇴직 후 지금은 소일거리 삼아 아파트관리원을 하신다. 야간근무 마치고 댁에 들어가서 막걸리 한 잔에 두부 한 조각을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분이시다. 종종 좋은 글이 있으면 나에게 카톡으로 넣어주시는데 얼마 전 보내주신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값싼 물건이나 보잘 것 없는 음식을 일컫는 옛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속담의 어원을 보면 '싼 게 비지떡'이란 말에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충북 제천의 봉양면과 백은면 사이 고개인 '박달재'는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박달재 근처 산골 마을엔 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들렀던 작은 주막이 있었는데, 박달재 고개 주막의 주모는 하룻밤 묵고 길 떠나는 선비들에게 늘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봉송으로 주었는데 봉송이라 함은 물건을 선사하려고 싸서 보내는 물건을 뜻한다. 

봉송을 받아 든 선비들이 "싼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모는 "싼 것은 비지떡입니다. 가시다가 배가 출출할 때 드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인 즉, '보자기에 싼 것이 콩비지로 만든 떡입니다'란 의미가 담긴 대답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비지떡은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비지(찌꺼기)에 쌀가루를 조금 넣고 소금 간을 해서 빈대떡처럼 만든 음식이다.

이 속담에서 배려와 정을 느낄 수 있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비지떡을 보자기에 싸서 전했던 산골마을 주모가 "다들 과거 급제해서 꼭 성공 하시게나"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런 바람을 봉송에 담지 않았던 것이다 '싼 게 비지떡', 값이 싼 것이 아닌 종이에 싼 것을 말하는 깊은 뜻은, 지금은 하찮은 물건을 이르는 말이지만, 오래 전엔 '값이 싸다'는 의미보다는 '보자기에 싸다' 즉, 가진 것은 없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나눠주는 따뜻한 정이 담긴 뜻으로 쓰여 졌던 의미였던 것이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밤에 난로 위에 김치전을 부쳐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여기에 가래떡을 연탄불에 구워주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침에는 어머니가 만드시는 아침밥 끓는 소리와 국 끓이는 냄새가 기상나팔이었다. 학교에 등교하여 난로 위에 도시락 얹혀 놓고 점심시간도 아닌 쉬는 시간에 점심을 먹곤 하였다. 이러던 것이 이제는 각 급 학교가 점심시간에 무상으로 단체급식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도시락을 안 싸다보니 어머니들이 아침을 대충 때워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아침밥 냄새가 기상나팔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이 기상나팔이다. 점심은 단체급식으로 해결하고 저녁조차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두 각자 바깥에서 해결하고 들어온다. 식탁에 앉아 같이 밥 먹으며 가족 간의 사랑이 도도히 흘렀는데 요즘은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생일조차 바깥에서 외식을 한다. 가족 간의 사랑이 많이 사라져간다. 

식구(食口)란 같이 밥 먹는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들은 집에서 어머니의 마음과 주막 주모의 배려가 듬뿍 담긴 음식 등을 먹고 자랐다. 소풍 갈 때 어머니의 김밥이 얼마나 귀하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식당에서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시던 음식을 마주하게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도는 경우가 있다. 도시락을 먹던 옛날이 마냥 그립다. 식판세대들이 이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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