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최근 수험생 부족으로 많은 지방 사립대학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 와중에 교수들은 생존을 위해서든지 반강제적이든지 본래 임무에서 벗어나 각종 잡무에 내몰리고 있다.

경제적 생존의 문제로 잡무에 휘둘리고 있지만, 교수들이 연구에 충실하지 못한 점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환란 속에서도 교수 자신이 속한 학과의 정원을 채우기 위해 입학생을 모시러 다니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부터 월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수험생 한명을 만나서 입학을 유도하기 위해 교수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설득하는 일은 기업의 영업사원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를 붙들고 설득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학생모집이 끝나면 교수들은 이제 취업업무에 내몰린다. 재학률과 마찬가지로 사립대의 돈줄을 쥔 정부의 각종 평가에서 취업률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1%라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취업청탁은 엄연한 김영란법 위반이요 학생에 대한 취업 촉구는 인권침해가 아닌가?

재정상태가 빈약한 지방 사립대로 갈수록 교수들의 입학과 취업 영업의 역사는 꽤 오래되어 이제는 몸에 밴 일상적인 업무인 듯하다. 인간은 적응력이 탁월해서 처음에는 부끄럽던 일도 자꾸 하다보면 자연스런 일로 여긴다.

특히, 생존을 위한 월급이 걸려있는 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잡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수준이 떨어지는 대학일수록 학생의 충원을 위해서 합격자 및 후보자들에게 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학과로 오시라는 사탕발림을 해야 한다. 소위 지도학생 제도를 만들어 학생에게 취업을 권하는 상담내용이나 취업사항까지 대학의 컴퓨터망 속에 들어가 세세하게 입력도 해야 한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들의 경력개발 의사결정에 교수가 공공연히 관여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밖에 없을 듯하다.

재학생의 휴학이나 자퇴를 막기 위한 상담을 하고 그 내용을 장부에 세세히 기록하거나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등록금 확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지만 해킹 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너무 크고 무섭기조차 한 일이다.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자퇴나 휴학을 만류하다가 제자로부터 인권위원회에 제소를 당하는 웃기고도 슬픈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 누구든지 긴장이 고조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교수들은 자신이 행정직원인지 교수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 빠져있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지방 사립대학 교수들이 체념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그들의 본래 임무인 연구와 강의에 몰입하지 못하는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당연히, 그것은 각종 잡무를 통해 받는 고통의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교수들은 그들을 그렇게 대우하는 대학당국을 비난하면서도 당장 떠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책망하며 우울하게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인지부조화의 상태로 훌륭한 연구와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만약, 수험생과 학부모가 이런 부조리한 내막을 알게 된다면 과연 그 대학에 지원을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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