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이장희 충북세정포럼 대표·충북대 명예교수 

지난 3월 9일 제 20대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사전 투표율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최종투표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지만 3·15부정선거 이후 최악의 부실선거 논란을 자초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 투표소에서 하나의 투표함을 두어야 한다는 선거관리규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정선거 의혹도 불러일으킬만할 정도였다. 코로나 19 확진된 자가격리자의 경우 빈 박스나 플라스틱 바구니에 심지어는 쓰레기통을 임시투표함으로 사용했으며 소중한 투표지를 임의대로 이동하는 등 파행이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작태에 항의하는 유권자들에게 난동을 일으켰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서 지나침을 넘어 극도의 권위주의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다 중차대한 투표일에 공휴일이라고 출근하지 않았다는 선관위위원장의 무책임하고 고압적인 빳빳한 태도는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제20대 대통령 당선자의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 주겠다’는 이 말은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다. 탈권위주의 관점에서 말이다. 우리 지역은 노무현 대통령이 휴양지였던 청남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던 그 날을 기억할 수 밖에 없고 많은 도지사나 시장관사가 개방되어 가는 추세이다. 일 년에 며칠도 쓰지 않는 별장을 돌려준 것인데도 그 당시엔 반대를 무릅쓴 용기였다.

지금 대통령이 쓰는 청와대는 권위주의의 표상이면서 과거 일본의 침략 지배시 통제하던 조선총독부가 이었던 곳이고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과감히 부셔버렸던 굴욕의 장소이다. 그리고 구중궁궐이라 한번 들어가면 여론이 막히고 소통이 불가능한 식물대통령이 되고 퇴임 후 반드시 감옥을 가는 불행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시대를 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싫은지 공약을 파기하고 말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집무실을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다. 저는 과거 10년 전부터 세종시가 완성되면 국회와 청와대를 옮겨 행정부와 함께 해야 한다는 토론을 해왔고 덧붙여 근교에 있는 청남대를 활용하자는 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 청와대 일개 비서관이 “청와대를 쓰지 않을 거면 우리가 계속 쓰면 되겠네” 는 비아냥거림은 탐욕의 극치를 보여 주는 오만한 실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집권에 실패하고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권력 하극상의 한 단면이다. 권력을 잡으면 그때는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물 흐르듯이 사라지는 권력을 놓지 안고 더 부여잡고픈 생각에서 일거다.

대통령과 당선인 양자회동이 불과 몇시간 전 불발 된 것만 보아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한다. 과거 살아생전 이어령씨의 말 중에 ‘가위 바위 보’ 논리가 생각난다. 누구도 완전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이고 삶과 죽음을 이어지는 고리로 보는 것인데, ‘뜨면 지는 것이다’라는 단순한 비행기 논리와도 같은 의미로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잡은 권력은 영원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이전비용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용단의 가치와 그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의 비용보다는 후세들에게 공개되어 공원화된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는 순리대로 하라 했는데 순응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윤석렬 당선인의 “국민에게 청와대를 돌려드리고 싶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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