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이 ‘궁궐’에 있었다. 궁궐 안에 있는 한,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 해법은 대통령 집무실이 궁궐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이 수많은 직원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미국의 백악관처럼, ‘오피스’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백악관,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독일의 연방총리관저 ‘분데스칸츨러암트’은 모두 복닥거리는 사무실이다. 민주국가의 행정수반은 그런 곳에서, 마치 국민이 그렇듯,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해야 한다.

이제는 ‘일하는 대통령’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은 끔찍하리만치 봉건적이다. 분명 민주주의 국가인데 5년마다 한 번씩 선거로 왕을 뽑은 후 새 왕으로 뽑히면 지난 왕의 목을 치는 비극이 바로 그런 구조적 모순의 되새김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만으로도 '권력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청와대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과 동시에 영욕의 시대를 마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기기로 확정했다.

청와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로 이용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이곳 이름을 경무대라고 명명하고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입주하자마자 이 전 대통령은 망치를 들고 경무대 내의 모든 일본산 전구와 가로등을 깨 버렸다.

이후 경무대가 청와대로 개명됐고 청와대 모습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 갖춰졌다. 그런데 청와대는 너무 넓다. 본관 대통령 집무실만 해도 면적이100㎡나 된다. 책상과 출입문 사이가 멀다 보니 장관이 대통령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나오다 넘어지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예로부터 용산은 '서울의 배꼽'이라고 불려 대통령 집무실의 적지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막상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다는 말이 나온 후 논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국정과 안보의 최고 컨트롤타워인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를 후딱 옮기는 데 따른 부작용은 없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하루 이틀 된 논의가 아니다. 청와대에서 나와 새로운 집무실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에 부속해 있는 건물 중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총 12곳. 그 중에는 ‘위민관’에서 ‘여민관’으로 이름이 바뀐 비서실도 포함돼 있는데, 그 건물만 해도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정권이 “탈 청와대”를 외친 이유는 비슷하다. ‘국민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경복궁 뒤편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국민에게서 멀어지고 민심의 동향으로부터 어두워져, 결국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대통령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청와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놓고 문 대통령간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청와대는 안보 공백을 내세워 제동을 걸고 있고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이 늦어지더라도 청와대 개방 약속은 지키겠다"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대치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고 이러다가 정권 인수인계까지 삐걱거리게 될까 걱정이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가 안보는 빈틈이 없어야 한다."라며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안보 중요성을 강조하며 청와대 이전에 거듭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윤 당선인은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굉장히 편하겠지만 국민들과 약속을 어겨선 안 된다."라며 집무실 이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양측 간 불통과 대립이 오히려 안보 불안을 부추긴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신구 권력의 반목은 위기 대응능력을 약화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청와대가 어깃장을 놓는 것도 원만한 정부 인수인계를 바라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집무실 이전은 문 대통령도 공약했던 사안이 아니던가. 감정싸움을 노출하기보다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시기나 방법을 놓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주고받으면서 절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양측은 볼썽사나운 충돌을 멈추고 원활한 정권 이양을 위해 하루빨리 얼굴을 맞대야 한다. 정권 교체기 북한 도발이 우려되고 이제 곧 한미연합훈련도 시작된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의지가 확정됐기에 세밀하게 계획을 수립해 이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민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인 대통령의 퇴근길을 바라보며 이젠 정말 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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