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봄이 오고 가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임에 불구하고 해마다 새롭다. 올해도 양지쪽 바람이 멈추는 곳에는 여지없이 봄은 노란 개나리로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겨울은 원래 춥다고 한다지만, 겨울이 지난 이른 봄에는 모두가 조금씩 세상을 향하여 희망의 얼굴을 내민다. 이렇듯 겨울은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나고, 그 험난함을 견디고 나면, 봄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움트게 한다.

인간은 수억 년을 이 변화를 겪어왔음에도 아직도 어설프다. 생명이 다했다고 여겼던 나뭇가지에서 초록의 새싹이 트면, 마음속의 수 없이 많은 상념들이 꿈틀거리며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난다. 억압의 시절에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잠에서 깨어난 생각에도 새싹이 무성하게 돋아난다. 올해도 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지난 몇 달은 시끄럽던 대선이 우리의 생각을 선거에 관련된 잡다한 일들로 꽉 채워놓았다. 후보들이 서로를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던 시간이 지나고 근소한 차이로 대선투표는 끝났다. 정치계에서는 그 동안의 유치찬란한 행위들이 부끄러워졌는지 헛기침을 하는 정치꾼들이 많아졌다. 잡아 뜯던 머리를 빗질하며 그럴듯한 표정으로 체면을 회복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나가는 봄도 염치없게도 그러한 정치권에 삐쭉이 얼굴을 디밀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정치계의 봄은 뉴스의 아나운서의 가벼워진 표정과 상큼한 옷차림으로 다가온다.

올해의 봄은 잔인하고 어지러운 시절을 서성인다. 아직은 찬바람이 그리 편치 않은 날에 지구의 한쪽에서는 봄꽃 대신에 폭탄이 터지고 있다. 멀고 작은 나라 우크라이나의 올해의 봄은 가장 춥고 황량하다. 봄이 머무는 초록의 벌판에는 봄꽃이 대신에 우크라이나의 대지는 검붉게 핀 피의 꽃과 죽음의 검은 먼지로 뒤덮여 있다.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작은 나라는 원하지 않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침략당한 전쟁은 선택권이 없다. 무차별로 떨어지는 폭탄은 지구촌의 봄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늘 봄은 원래 그리 잔인하여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틀이 법이라고 한다. 지구촌에도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있다. 그러나 그 법은 지키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의 국내외법들은 결국에는 힘 있는 자의 이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실만을 한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소수의 이익에 의하여 인류의 광기어린 역사는 수 없이 반복되고 있다. 무엇에인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런 익숙해진 삶의 인류는 변화에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은 전쟁이라는 구실이 되어 많은 선량한 생명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가기도 한다. 무엇을 위하여 힘없고 선한 자들은 봄날의 마른 풀잎처럼 사그라져간다.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의 폭력은 인류의 재앙이다.

전쟁은 무한의 인명 살상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일까? 위정자들의 작은 행복을 위하여 많은 국민들이 수탈당하고 그리고 생명까지 약탈당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의 역사는 소수의 정권쟁취를 위하여 많은 생명을 담보로 한 기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자신들의 권력 투쟁을 위하여 전쟁을 유발하였고 백성을 잔인하게 이용하였다. 전쟁이나 정책의 실패의 부담은 일반 백성들이 걸머지고 가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전쟁은 잔혹한 암흑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추위와 공포는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친밀하다. 죽음의 공포는 인류에게 예외가 없다. 세계의 전쟁도 패거리 싸움이다. 국가는 국가 간에 존재하는 이익을 위하여 성벽을 쌓는다. 국제적인 기구도 몇 개의 강대국들이 힘을 겨루는 격투의 장으로 전략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봄이 지나가는 들판에 선택권이 없는 죽음이 즐비하다. 우크라이나에는 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소련제 탱크의 열기와 터지는 폭음과 그리고 좌절로 망가져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이 남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 먼저 시작한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잠시 휴전의 상태로 들어선 것일 뿐, 그렇게 거의 칠십 번째의 봄을 우리는 겪고 있다. 그러기에 우크라이나의 비명소리가 우리에게는 더 크게 들리는 이유이다.

봄의 소리를 듣는다. 따스한 봄볕에 터져오는 꽃봉오리의 터지는 소리가 아니다. 이 봄에 풀잎처럼 바람 부는 대로 스러져가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비록은 멀지만 아주 가까운 소리로 가슴에 박힌다. 봄바람에 잔가지 흔들리듯 가슴이 흔들리어 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봄 하늘이 덩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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