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파릇하다. 삼삼오오 걷는 이들에게서 상큼한 향기가 풍겨온다. 대학가의 봄맞이하는 날인가 보다. 그동안 전염병으로 먹구름이 내려앉았던 거리는 빛바랜 흑백사진 같았다. 상영 중이던 영화가 필름이 끊긴 것처럼 화면이 정지되었었다.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의 움직임만으로 활기를 찾는다. 싱그러움에 내 마음도 달뜬다.

몇 해 전 큰아이가 대학 새내기이던 시절이었다. 원룸에 짐을 풀어놓고 아이만 남겨둔 채 돌아오는 길은 착잡했다. 내 품을 떠나 점점 멀어지는 아쉬움과 건강하게 자라준 고마움이 한데 엉겨 뜨거운 눈물로 내려왔다. 군 입대와 복학을 거듭하며 하루하루 꿈을 키웠을 아들은 이제 준비도 없이 사회로 밀려 나왔다. 어디 그만의 외로움일까. 스스로를 먹이고 뉘일 자리를 마련하는 벌이 정도는 해 내고 싶을 게다. 청청하던 패기가 멋쩍게 어스름한 거리를 걷는다. 대학 입시보다 더 치열한 취업준비생의 새내기로 버텨내기의 명수인 이시대의 젊은이 중 한사람이 되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 온 작은아이는 복학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걸 밑천으로 학교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막내로 사랑만 받던 스물셋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 아닐까. 부모로서 신경 써주는 부분이 있어 완전한 독립은 아니라지만 첫날밤은 안쓰럽게도 악몽을 꾸었다고 한다.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것의 부담감으로 온전히 즐겁지만은 않았나 보다. 비교적 결핍 없이 자라 온 막둥이의 독립은 기특함보다 애잔함이 더하다. 그래도 당당한 독립의 새내기이다.

남편에게도 새내기 시절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군 입대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단다. 그가 고학을 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은이 일적에 결혼을 하였다. 어느새 그도 나도 이순을 바라본다. 서른 해를 함께 살아오면서 사랑하며 지켜 이루어 낸 과정이 동행자로 소중하기만 하다. 그도 걸어오는 내내 발자욱을 내디딜 때마다 마주치는 새로운 날에 두려움이 없었을까마는 의연하게 대처했으니 고마움이 앞선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내 인생의 텃밭에도 간간이 흙을 고르고 퇴비를 뿌려 두었었다. 양분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았지만 서둘러 모종을 심었다. 일터를 떠날 때 즈음으로 계획했던 문학 공부이다.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어 모임에 참석하면 모두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뒤로 가는 느낌이 들었었다. 좀 더 깊이 있게 공부를 하고 싶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가졌던 소망 중 하나인 은퇴 후에 작은 책방을 여는 소박한 꿈을 이루려면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편하게 들러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서둘러 계획을 앞당겼으니 주경야독을 한다. 늦깎이 학생의 몸은 무겁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 덕분에 배움의 텃밭에서 하루해를 아쉬워한다. 

새내기의 사전적 의미는 신입생 또는 신출내기를 뜻한다. 대학, 직장을 새로 갓 들어 온 사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태어난 자체만으로 우리 모두는 새내기이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내는 내내 새내기이기도 하다. 

오늘, 싱그러운 저들 속에 그들의 부모쯤 되어 보이는 나도 열정만큼은 파릇한 새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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