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전통의상은 각 국가가 간직해온 역사적 미학 의식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이다. 보통 한복(韓服)을 떠올리면 조선 시대의 옷이 연상되는데, 이는 시대적으로 가장 가깝고 생활에서도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한복(韓服)은 한민족의 전통의상을 지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성장했다. 복식은 동북아시아 기마민족과 계급이 발전한 청동기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윗옷에 매는 허리끈, 말타기와 활쏘기를 간편하게 해주는 왼쪽 여밈, 치마보다 바지 중심의 유고제가 자리를 잡았고 계급에 따라 귀족과 평민의 옷이 달랐다. 비슷한 시기에 부여는 흰색을 매우 선호했는데, 이는 흰옷을 선호하여 우리가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불리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삼국시대 복식을 생각하면 중국 양나라 때 양직공도(梁職貢圖)라는 사신을 그린 그림이 떠오른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사신이 차례로 서 있는 그림에서 같은 한민족이라도 삼국의 다른 복식을 보여주니 흥미롭다. 신라의 사신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독특한 관모를 쓰고 있고, 고구려 사신은 삼국 중 가장 화려하다. 통이 넓은 바지에 긴 포를 입고 있다. 백제의 사신도 통이 넓은 바지와 포를 입고 있으나 고구려보다 소박한 느낌이다.

고구려는 고분벽화를 통해 그 시대 복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안악3호분은 357년(고국원왕)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북한 황해도에 있다. 고분은 남방계 복식과 북방계 복식의 융합과정을 보여주며, 화려한 복식과 대행렬을 거느리고 있는 것 등으로 벽화 속 인물은 높은 신분임을 알 수 있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만들어진 무용총는 한국 고유의 토착적인 복식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중국의 오른쪽 여밈이 들어오기 전 사용했던 왼쪽 여밈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다.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고구려 복식의 춤추던 무용수가 바로 무용총 속 인물이다.

백제는 서남쪽 한강 유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문화적 발전을 크게 이루었다. 주변국의 복식문화도 수용하며 세련되고 귀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식 관모가 들어오기 전 이미 백제는 전통적인 금제 관모를 사용했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독특한 사회제도 속에서 독특하고 복식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왕의 예복은 어느 국가보다 거대하고 화려했던 장식문화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나무, 사슴 뿔, 나뭇잎 등의 금관, 금귀걸이와 금목걸이 등 굉장히 화려하다.

한복(韓服)은 북방기마민족 복식의 특징을 한중일 삼국 중 가장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가 동북아지역 만주 일대 영토를 차지한 국가이니 이는 당연하다. 중국도 북방기마민족 복식의 영향으로 바지를 입고 소매가 좁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참고로 중국 고대 복식은 원래 바지가 없고 치마가 발달했으며 바지가 도입된 것은 전국시대부터이다.

고대 한복(韓服)에서 가장 정확한 문헌적 자료를 가진 것은 고구려이며, 이유는 고분벽화 때문이다. 고대의 한복(韓服)은 문헌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후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를 참고하거나, 주변국의 문헌과 유물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고대부터 점차 변화하여 지금에 이른 한복(韓服)의 분명한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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