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남녘을 향해 여행을 떠나던 날, 매화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날짜로 치자면 이미 많이 늦었고 다만 수수한 서민 같은 벚꽃이라도 만난다면 그건 행운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꽃을 좇아 일부러 떠나 본 적도 없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닿는 여행의 가치를 즐기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도착하자 매향이 훅 다가왔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주위를 더듬어 향기의 근원지를 살폈다. 근처에 휘어질 대로 휘어진 홍매화 나무 몇 그루가 드문드문 서 있었다. 매화는 향기가 고개를 들게 한다더니 비록 낙화를 목전에 두었어도 바람결을 타고 온 향기만큼은 은은하고 자태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 해부터인지 개화의 시기가 점점 빨라졌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온난화 때문이라고 했고 개화 시기뿐 아니라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도 안 되게 더운 여름이나 겨울답지 않은 겨울도 기후변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지난 금요일에 제19회 청주예술제가 개막되었다. 그러나 무심천의 벚꽃은 잔뜩 꽃봉오리를 오므리고 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서야 양지바른 쪽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으나 이 추세라면 4월 중순까지는 넉넉하게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의 여의도 벚꽃길도 예외가 아니란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만에 이 길을 개방할 예정인데 왜 꽃이 늦게 피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다만 날씨가 저온이라 일주일 늦게 개방한다고만 했다.

예술제 행사 중에 열린 청주시민건축학교 강좌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강좌를 듣고 나서였다. 물론 이 해답은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와 기후 위기 시대의 인권’을 주제로 한 ‘성공회대학교 조효제 사회학자’의 강의는 왜 우리가 탄소중립의 사회로 향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이 있었다.

탄소배출의 역사는 18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약 80%의 탄소배출 책임은 선진국이며 경제적 부를 이루면서 큰 집을 유지하기 위해 과다하게 난방해야 하고 여러 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거나 비행기를 이용해 즐기는 해외여행 등이 모두 사치형 탄소배출이라는 것이다.

반면 20%의 탄소배출은 생계형이라 줄이려고 해봐야 줄일 수가 없으니 어느 계층이 탄소중립의 선봉에 나서야 하는지 명확하다. 더구나 지구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의 피해를 오롯이 빈민층이 겪어야 하므로 80%의 책임을 20%가 져야 하는 일은 대단히 불공정하다. 그러므로 삶이 턱까지 차오른 소상공인, 저소득자의 인권은 부유층이 배출한 탄소에 고스란히 침해당하고 있다는 논리는 타당했다.

탄소배출이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이런 환경에 적응을 거듭한 야생동물이 변이하여 인간의 몸을 뚫고 바이러스를 침투시킨단다. 따듯해진 지구는 바이러스의 먹잇감이므로 기후변화를 날씨의 변화로만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부끄럽게도 과한 탄소배출의 심각성을 몰랐다. 전기, 상수도, 도시가스 사용량을 줄여 에너지를 절감하고 그 덕분으로 몇 푼의 인센티브를 받는 탄소포인트제 정도만 인식했고 아직도 2010년부터 시작된 국민의 생활 속 온실가스 감축 실천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지금을 저온의 날씨라고 단순하게 묘사했으나 실낱같은 희망을 건다. 지구가 원래대로 회복되는 거라고 믿고 싶다. 복원되는 증거로 기온이 낮아지고 개화의 시기가 늦어지는 거라면 그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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