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정헤련 사회복지사

삼익우(三益友)는 사귀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세 가지의 벗을 의미하는데 ‘심성이 곧은 사람’과 ‘믿음직한 사람’, ‘문견(聞見)이 많은 사람’을 이른다. 참으로 충청도 사람의 기질을 표현하기에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다. 지역별로 사람의 특징을 나눠놓은 글들을 보면 충청도 사람이 순하다고 했다가 속을 알 수 없다거나 무섭고 독하다고 하기도 한다. 성실한데 느리다고도 하는데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타지방 사람들은 일관되게 한 가지로 표현하면서 유독 충청도 사람은 다양하게 묘사된다. 재미있는 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은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자기들끼리 말은 많은데, 정작 당사자들은 “맞는 말도 있다.”라며 빙그레 웃는다. 그래서 나는 충청도 사람은 진짜 순하고 속을 알 수 없고 독하고 성실한데 느린 사람인가 하고 내 조상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충청도 사람은 고대국가 시대에 처음에는 백제인이었고, 이후에는 고구려인이었으며 나중에는 신라인이었다. 후에는 통일신라인이 되었고 후삼국 시대는 후백제 사람이었지만 결국 고려사람이 되었다가 그 후엔 조선사람이 되었다. 전쟁으로 나라가 자주 바뀌어 쉽게 속내를 못 보이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은 충청도 사람한테 너는 백제사람이라고 하면 선뜻 대답이 안 나온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기 때문이다. 고구려도 내 나라였고, 신라도 내 나라인데 어디를 딱 짚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삼국의 특징도 모두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국가가 실질적인 내 나라였던 이 엄청난 경험은 오직 충청도 사람만 했으니, 어찌 우리 속내를 알겠는가? 이것은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며 아우르는 포용력을 키우게 했다.

섣불리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단정적으로 결론 내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며 주장하는 능력도 발전시켰다. 쉽게 속내를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뭐가 맞는지 생각 좀 해봐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는 ‘충청도 양반’이라는 애칭이 있듯이 점잖고 예의 있는 모습과 천천히 말하는 태도가 이유인 것 같다. 실제로 충청도에는 조선 시대부터 양반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대부에서 그 세가 강했던 노론의 거두 송시열이 충청도 출신이니 더 많이들 모여 살았을 수도 있다.

양반이 많이 사는 충청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뛸 일 없이 여유 있게 걸어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여봐라 게 있느냐?” 하면 되는데 급할 게 있을 리 없다. 할 말은 하면서 도리를 다하려니, 은유법과 상대가 생각하게 만드는 화법이 강하다. 더 대단한 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나서 목숨을 걸고 싸우니 충청도 사람이 이리 독한가 싶었을 거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이산겸 등 많은 의병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한 3명을 제외하고 30명 중 충청도 사람이 7명인데, 한강 이남 지역에선 압도적으로 제일 많다. 이 역시 인구비례를 따지면 더욱 대단하다. 이러다 보니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라고 떠드는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데, 진실은 좀 알려주고 싶다. 충청도 사람은 ‘심성이 곧고 믿음직하며 문견(聞見)이 많은 사람’이니 앞으로는 길게 말할 거 없이 그냥 삼익우(三益友)라고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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