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낭보가 전해졌다. 이쯤 되면 기쁜 소식이 틀림없어야 했다. 비록 50인 이상이 모일 때는 착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는 해제라는 소식은 날아갈 듯 기뻐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이 소식을 반기지 않았다. 드디어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게 되었는데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더 걱정했다. 지인 몇 명에게 의도적으로 물어보니 다들 계속 마스크를 쓸 예정이라고 했다. 만약 그냥 다니다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라고 마스크를 벗냐고 손사래까지 치는데 마스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엿보였다.

추운 겨울에는 내 숨이 내뿜는 김 서린 안경을 쓰고 걷다가 걸핏하면 넘어져 다쳤다. 그런 지경이여도 마스크 쓰기를 마다하지 못했고 더운 여름에는 땀에 범벅이 되어도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습함을 견디지 못한 입가 피부에 염증이 생겨도 옷을 입어야 외출하듯 마스크도 외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야 말았으니 벗으라고 한다고 금세 벗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던가.

사실 정부로부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라는 지시가 있고 난 후에도 걸핏하면 잊고 외출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피하거나, 아니면 저희끼리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야 인지하곤 해서 그럴 때마다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그런 경우를 대비해 들고 다니는 가방에 여벌의 마스크 몇 개를 미리 넣어두었다. 현관문에는 고리를 달아 마스크를 걸어 놓고 그냥 나가는 법이 없도록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병원에 자주 가곤 했다. 걸핏하면 편도선염과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 이후 병원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처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형편에 맞추면 산 세월이 어언 2년이 넘었다. 어찌 보면 마스크 착용은 건강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계기도 된다.

마스크는 보온을 위해 겨울에만 쓰는 물건쯤으로 알았다. 물론 직업의 특수성으로 근무 중에도 자주 쓰는 편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틈새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효능도 불분명한 마스크를 부여잡고 의지했던 지난 시절은 처절했다.

처음에는 생년에 맞추어 날짜와 구매 개수를 지정해줘 약국마다 줄을 서야 했다. 나중에는 이왕 착용해야 하는 거라면 외모를 빛내주는 액세서리 역할까지 해야 했기에 멋까지 고려해 다양한 색상과 소재의 새부리용 마스크가 출시되었다.

마스크의 의무 착용 시기를 두고 현 정부와 새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다툼이 있는 모양새다. 현 정부 관계자는 전문가의 분석, 세계적 흐름을 감안하여 정부 내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고 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시기상조라고 하며 정부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번 결정이 어찌 되었든 국민 대다수는 마스크 착용을 쉽게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 스스로 마스크의 효능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고 누가 뭐래도 마스크가 주는 이익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이익 계산을 따져 논쟁을 벌이거나 걸핏하면 국민을 앞세워 계산된 프레임을 만드는 일 따위는 거두시라. 그러기에는 이미 많은 것을 스스로 경험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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