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그토록 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더니 어느새 5월이다. 너무나 기다리던 봄이다. 오늘따라 가다가 멈춰, 하늘과 땅을 쳐다보며 다시 걷고 싶어진다.

‘봄’ 하면 무엇보다 ‘꽂’이다. 봄에는 동백꽃,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다래 등이 피어난다. 얼마 전엔 벚꽃이 그토록 흐드러지더니, 이제는 영산홍 또한 눈부시도록 현란(絢爛)하다.

이어서 여기 저기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다. 멈추어 바라보니 눈처럼 하얗게 피어난다.

아무리 보아도 붉은 색이나 노란색 꽃보다 한 차원 높아 보인다. 그만큼 고결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제 머지않아 장미꽃도 피어난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꽃 아닌가.

‘꽃 중의 꽃’ 장미는 낭만적 사랑, 열정, 우아함을 나타낸다.

장미를 보노라면, 프랑스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장미 빛 인생(La Vie En Rose)’이 떠오른다. 이 노래에서 그녀는 6살 연하의 배우 겸 가수인 이브 몽땅(Yves Montand)과 사랑에 빠져 있던 달콤한 감정을 장밋빛으로 읊조린다.

다음으로 무척이나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에 심취(心醉)했던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이야기다.

릴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독일의 여성 작가 루 살로메(Lou Andreas Salome)를 만나 몇 년간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녀는 릴케에게 상처만 주고 떠나 버렸다.

그런데도 릴케는 살로메를 애타게 그리며 살다가, 어느 날 장미꽃을 꺾으려다 장미꽃 가시에 찔려 죽고 만다.

이처럼 죽는 날까지 열렬히 사랑했던 릴케의 사랑은 참으로 애절(哀切)하다.

또 다시 펼쳐진 봄, 어쩌면 ‘봄은 꽃’이고 ‘꽃이 봄’이다.

이런 날엔 걸음을 멈추면서 꽃길을 걸어보자. 그러면 마음이 열려 여백(餘白)이 생긴다. 넉넉함이 있어야 꽃들을 사유(思惟)할 수 있다. 여백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무릇 이 세상 꽃들은 무슨 꽃이든 고유의 색채가 있고 본성(本性)이 있다. 그러기에 어떤 꽃이든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

모름지기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진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봄은 청춘으로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렇지만 이런 청춘도 나이 들면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는 장년(壯年)이 되고 노년(老年)이 된다.

이로써 자연에서 태어나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 가치(價値)있게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욕구를 통해 자기답게 사느냐이다.

‘좋은 삶’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 늙어가도, 가치를 지니고 지혜롭게 살면 겨울이 아니다.

탈무드에서 ‘어리석은 자의 노년은 겨울이지만, 현자(賢者)의 노년은 황금기(黃金期)이다.’라 했다.

이로보아 아무리 나이 들어가도 자신의 가치관(價値觀)에 따라 뭔가를 새롭게 추구하는 한, 결코 노인이 아니다. 늘 새로움을 채워가는 한 ‘청춘 같은 노년’이다.

왠지 오늘따라 봄빛이 환한 들녘의 꽃들이 웃으면서 반기고 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다.

이토록 펼쳐진 빛나는 오월! 아무래도 저 남녘땅으로 내려가야겠다. 가서 화사(華奢)한 꽃들에 실컷 취하고 싶다.

그럼에도 이런 봄도 언제 왔는지 모르게 떠날 것이다. 떠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그리운 이 시간, 박시교의 시(詩) '독작(獨酌)'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를 음미(吟味)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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