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사성어에 낙화유수(落花流水)란 말이 있다. 떨어질 락(落), 꽃 화(花), 흐를 류(流), 물 수(水). 한문 글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뜻이다. 어느덧 왔다싶던 봄은 봄꽃을 만개시키더니 이젠 쭈글쭈글하게 시든 꽃잎이 뚝뚝 떨어졌다.
떨어진 꽃잎은 물에 실려 유유히 떠내려간다. 한편의 수묵담채가 그려진다. 봄 풍경이다. 지나는 봄을 아쉬워하는 요즘이다. 화사하게 핀 꽃은 언젠가는 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꽃은 영원 할 수 없다.
한 때의 영화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낙화유수는 그런 애상을 가진 말이다. 힘을 자랑하나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로 권력자를 경계할 때도 쓰인다. 물 위에 내려 앉아 떠나가는 꽃잎의 이미지는 유유낙낙하므로 남녀 간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자주 인용된다.
물은 형태만 달리할 뿐 항구성을 지녔으므로 변치 않는 애정에 비유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모하는 정은 끊기지 않음을 물로 묘사하기도 한다. 낙화유수는 당나라 시인 고변의 시 '방은자불우'(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네)에서 유래됐다.
"꽃이 떨어지고 물이 흐르니 세상이 넓음을 알고/ 술에 반쯤 취해 한가하게 시 읊으며 홀로 왔다네/ 안타깝게도 선옹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데/ 뜰에는 붉은 살구꽃과 푸른 복숭아꽃만 활짝 피어 가득하구나/"
유구한 자연 속에 화자는 인간이 새삼 고적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번 대통령의 떠나는 권력과 새로 들어서는 권력간 건건이 대립하는 모습을 볼 때 국민들은 실망했다. 꽃이 열흘 가기 어렵고 사람은 1000일을 좋을 수 없다는 '권불십년 인무천일호'라는 말이 생각이 날 정도다.
물러나는 정권은 새로 들어서는 정권에 곱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 세상의 섭리였다. 대통령의 업적은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 빛은 후임 대통령이 계승 발전시키고, 그림자는 국정 운영의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만이다.
정권 교체기에 자신이 주도한 정책을 차기 정권이 부정한다고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 의욕적으로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하는 의연함을 보이는 것이 결국 떠나는 대통령을 위한 길이다.
그럴수록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물러나는 대통령 자신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국민 통합의 가장 기본적 전제 조건이 아닌가?
새 대통령에 취임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실체를 부정하지 말고, 국정 인계에 협력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문 대통령이 언론과의 대담에서 윤 당선인이 구상하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부정적 발언을 쏟아낸 것은 차기 대통령을 자신과 동등한 대통령으로 인정하기를 애써 거부한 것으로 비쳐지기에 충분하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 쓰기’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한 것이 현 정부였는데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5월 하순으로 해제를 검토해 달라는 입장을 무시하고 ‘실외 마스크 벗기’를 전격 결정한 점도 안타깝다.
‘정치방역’이 아닌 ‘과학방역’에 충실했다면 K방역 평가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어떤 이념을 지닌 누구로 바뀌든, 대한민국 정부는 연속성을 갖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민은 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출발하는 새 정부가 의도한 정책을 마음껏 펼 수 있도록 자신의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지지자들을 부추겨 윤 대통령 당선인을 흠집 내고 새 정부의 출발을 방해하는 것처럼 국민들의 눈에 비춰서는 안 될 일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아가며 사저로 떠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런 분위기라면 떠나는 권력자였던 그를 바라보며 노후를 보내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화무십일홍','낙화유수'란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