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엄마'하고 부른다. 반백 년의 세월이 온 모습에 붙어 있건만 해맑은 표정이다. 옳고 그름,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에 집중적으로 교육이 된 지천명의 그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보다 사리에 밝은 어머니를 통제하려 한다. 별반 신경 쓰지 않고 일을 보는 어머니를 향해 큰 소리로 제지하다가 이내 좋아하는 먹을거리 앞에 멈추어 선다. 잠시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오고 지나는 이들도 안심한다.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한다.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은 어린 시절 장터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고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사방팔방 딸을 찾아다녔으나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 어디서든 살아 있기만을 기도했다. 연락이 온 시설로 찾아가면서 이번에도 허탕 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오매불망 그리던 딸이더란다. 이미 새 가정을 꾸리고 있던 어머니는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원망도 없이 긴 세월을 뛰어넘은 딸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단다.

남편도 아내의 자식은 자신의 자식이라며 먼저 짐을 챙겼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지병으로 생을 달리하고 둘만 남게 되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와 딸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는 딸을 두고 가야 할 앞날이 걱정이란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삶이 그들처럼 이해가 깊거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소한 일로 손톱을 세워 상처 난 것이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결국 흉터로 남는 것은 이기심 때문인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덧나기 쉬우며 설령 시간이 지나 아무는 듯하지만 깊숙한 곳에는 고름으로 가득 차 있다. 바람만 스쳐도 쓰리고 아픈 것은 겉으로는 의연한 듯하지만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통증으로 고통스런 밤을 보내게 된다. 잘 소독된 의료도구로 고름을 걷어 내고 약을 바르더라도 그 부위는 내 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독한 무감각의 시간이다.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까.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딸은 시골 장터에서 왜 자신의 손을 놓았느냐며 어머니를 원망했으리라. 온전하지 않은 딸이 당신의 손을 놓치고 보낸 세월을 안타까워하던 어머니도 한 번씩은 천방지축인 딸을 책망했으리라. 자식을 사랑하기에 엄해야 했고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라 여겼을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속울음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일까. 그러는 동안 지혜가 깃들어 따뜻하게 대화 나누는 법을 연습했으리라. 아직도 유년에 머문 딸과 사는 법이 서툴기에.

푸르기만 하던 오월이 아릿하다.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일들이 떠오른다. 여자라는 동질감보다 딸이기에, 며느리이기에 참으라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바늘로 쿡쿡 찌른다. 그리도 서러웠는데 요즘은 함께 할 수 없으므로 그런 말조차 그리움이 되었다. 휘몰아치던 감정도 때가 되면 담장 아래 꽃밭처럼 포근해지나 보다.

상처받기 쉽지만 또 그런 가운데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날은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밥상에 정성을 들이며 이렇게라도 해줄 수 있음에 감사했으리라. 모든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하며 그들의 일상을 보며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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