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가난할 빈(貧), 사람 자(者), 한 일(一), 등잔 등(燈)자를 써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가난한 사람이 바친 등불 하나. 물질이 적고 많은 것보다는 마음의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불교의 고사이다. 

지난 8일 코로나로 인하여 몇 년만에 봉행된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국민들의 환희심으로 봉행 되었지만 그 때만 돌아오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난타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슈라바스터에 살던 가난한 여인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그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부자였고 언제나 착한 누님처럼 우아한 모습을 보여줬다. '현우경'이라는 불경은 그녀의 아름다운 행적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난타는 어느 날 길거리에 나갔다가 부자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난타는 궁리 끝에 구걸해서 은전 한 닢을 얻어 그것으로 기름을 샀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만들어서 기원정사로 찾아갔다. 먼발치에서 부처님을 뵌 그녀는 구석진 곳에 초라한 등불을 밝히고 설법을 들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흩어지자 등불도 하나씩 꺼져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벽이 되어도 그녀가 켜놓은 등불은 꺼지지 않고 점점 더 밝은 빛을 냈다. 난타가 깨끗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밝힌 그 등불이었다. 당번을 맡은 목련존자는 날이 밝아오자 등불을 끄려 했으나 그녀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은 꺼지지 않는 난타의 등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난타가 밝힌 등불이 어떤 큰 등불보다 더 오래 어둠을 밝히는구나"라고 했다. "가난한 여인의 깨끗한 정성을 뜻하는 '빈자일등'의 고사성어는 이 설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사람의 인격이나 진실됨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난타와 같은 가난한 여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불쌍한 인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은 재산이 많고 적음, 지위가 낮고 높음, 외모가 추하고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허우대 멀쩡한 사람도 의외로 도덕적 흠결이 많은 경우를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지도자라고 믿었다가 실망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속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은 반드시 그런 사람들만 판치는 황량한 벌판은 아니다. 돌아보면 그 속에도 난타처럼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다. 병든 아내를 보살펴 가며 아이를 키우는 남편,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사람, 평생 모은 재산을 좋은 곳에 써달라며 기부하는 할머니, 버려진 동물을 데려다 기르는 아주머니 등도 많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의 후미진 곳을 밝히는 난타의 등불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나갔지만 부처님오신날에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면 우리 스스로 이웃을 위해 작은 등불이 되어야 한다. 내 몸을 등불로 삼아 가까운 사람의 마음부터 환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부처님의 자비로 따뜻하고 밝은 빛이 온 누리에 고루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처럼 '빈자일등'이 보여주듯이 물질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메마르다고 할지라도, 정성을 나누는 삶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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