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심완보 충청대 교수

필자가 ‘세계화’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1995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95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만들자’였던 것 같다.

당시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으로 연일 TV뉴스에서는 세계화 관련 뉴스가 쏟아졌고 대한민국은 경제, 교육, 문화 등 국정 전 분야에서 ‘세계화’로의 개편이 진행되었던 기억이다.

세계화는 수송수단의 발달에 따라 제품 생산에 거리가 덜 중요해지면서 부품이나 제품의 생산을 거리가 가까운 곳보다는 가장 생산비용이 저렴한 곳에서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1995년 WTO가 발족하면서 세계무역은 1980년부터 2007년 사이에 10배나 급증했고 이에 힘입어 한국 등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세계화는 현재 융성기를 지나 퇴조기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로봇, 인공지능, 3D프린터 제조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제품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 가능해졌고 최근 코로나로 인한 지역봉쇄와 국가 간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가속화 되고 있다.

세계화 덕에 세계는 오랜 기간 낮은 물가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곳곳에서 무역 장벽을 높이니 물가가 출렁이고 있다. 벌써 많은 국가가 높은 물가에 고통 받고 있다. 세계화 시대엔 비용 절감을 위해 오프 쇼어링으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던 선진국 기업들이 이제는 국내로 돌아와 생산하는 리 쇼어링, 더 나아가 온 쇼어링으로 돌아서고 있다. 자국으로의 온 쇼어링이 늘면 높은 인건비로 인해 오프 쇼어링보다 비용 절감이 어려워져 물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현상이 전 세계에 도미노처럼 일어나면 물가는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선진국 기업이 생산 공장을 해외로 옮긴 덕에 신흥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고 한국은 이 과정에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화에 위기가 닥치고 있고 많은 기업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91년 말 소련 해체 이후에 우리가 겪어왔던 30년간의 세계가 이제는 반대로 되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무역과 투자는 단순한 관세 등의 장벽이 아니라 넘을 수조차 없는 철의 장막이 쳐질 것이다.

유럽의 에너지와 미국의 반도체는 모두 필수 재화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도록 허용한 사례인데, 유럽은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그 위험성을 깨닫고 해외 의존적인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로 전환하고 있고, 미국은 한국과 대만을 통해 조달하던 반도체 공급망을 개편해 인텔에게는 오하이오에 새로운 반도체 팹을 세우게 했고, 삼성에게는 텍사스에 반도체 팹을 짓도록 하는 온 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는 점점 세계화의 장점이었던 가장 저렴하고, 가장 쉽고, 가장 친환경적인 공급망보다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망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미 한국은 더 이상 러시아와는 무역과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한국은 세계화가 종말을 맞으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위기탈출의 핵심은 경제의 자급 능력이다. 이제 우리도 러시아의 글로벌 공급망 퇴출로 인해 시작된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경제적 자급 능력을 갖춰 해결해 나갈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