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유월의 초록은 장미의 붉은 선홍색으로 인하여 참으로 더 빛난다. 사월, 오월 그리고 유월은 많은 사람들이 추운 계절의 밖으로 나와 어우러져 활동하는 시기이다. 한 해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활동이 원활해지는 시기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러 공화국 시절들을 겪어오면서, 매캐한 최류탄 냄새가 시작되는 시절이 이 시기였고, 또 수많은 시대적 희생이 시작된 시기도 대부분 이 시점이었다.

이 모든 활동은 만남으로 인하여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귀한 일이다. 지난 어느 어두운 시절에는 서너 명만 모여도 신고나 질책의 대상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절의 위정자는 사람들이 만남에서 산출되는 그 에너지를 두려워했던 것이리라. 행동이 통치자의 법으로 규제되고 생각이 통제되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우습게도 근간에는 또 다른 형태의 통제와 규제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코로나라는 사태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규제와 구속이라는 굴레를 우리에게 뒤집어 씌웠다. 저항할 수조차 없는 압박으로서 말이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모인다. 어떤 불가능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 벽을 뚫고 만난다.

사람들이 모이면 의견이 모아진다. 다수의 의견이 꼭 정의에 가까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정한다. 그렇다고 소수의 의견이 더 정의에 가깝다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표현한 표 하나하나가 모여서 당선증을 만들어 내었다. 당선증은 권력자에게 권력을 제공하는 증표이다. 그 권력은 표를 던진 자들을 향하여 가차 없이 적용된다. 선거철에 공약으로 내세웠던 답안지를 당선자에게 들이대고, 사람들은 당선자에게 그리하라고 닦달하지만, 답안지에 적은 내용은 당선용인 경우가 허다하다. 뭐 표를 던진 사람들이 꼭 당선자의 공약을 보고 표를 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유월은 장미의 계절이라 한다. 유독 장미 중에서도 선홍빛 장미가 매혹적인 이유는 왜일까? 인간의 핏빛이 빨간 것과는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투표로부터 나온 권력이 칼로 잡은 권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쉽게 우롱할 수 있다. 칼과 총구로부터 나온 권력은 최소한 부끄러워 할 줄은 안다. 그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그 권력은 질타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용 답안지로 얻은 권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면제부를 갖는다. 국민 각자로부터 표의 형태로 제공된 권력의 당위성은 겸손함도 부끄러움도 없다! 투표로 얻은 당선증은 권력자가 얻은 무소불위 권력의 양도 증명서이다.

아직도 우리의 선거라는 시험지는 완벽한 잣대의 기준이 아니라, 정치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전락된 지 오래 되었다. 선거가 휩쓸고 간 대한민국에는 당선자 측과 낙선자 측만 있다. 당선자의 손에 쥐어진 당선증과 낙선자의 손에 전달된 낙선의 비통함은 출세한 자들과 출세하지 못한 자들만을 양산한다. 어찌 되었든, 권력은 영원한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속성을 기지고 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권력은 국민의 권력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경우, 출세한 자들로 인하여 국민들을 스스로 개나 돼지가 되는 여지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당선자에게 주어지는 당선증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당선증은 권력의 소유자를 명백히 설정하고 있다. 당선증이 제공된 시스템은 분명히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당선은 꼭 축하받을만한 일만은 아니다. 당선은 권력과 함께 축하의 찬사를 당선자에게 제공한다. 그 이후의 대부분의 당선자의 시간은 질책과 원망의 대상이 되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한꺼번에 떠드는 군중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정치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만족시켜 줄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항상 배신을 한다. 권력을 받은 자가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그 자체가 배신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권력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양도의 형태로 우리 국민 각자는 당선자에게 권리를 권력의 형태로 양도해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선거의 당선자가 받은 그 증명서는 결코 행복의 증명서만은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존재인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면, 권력자는 그 위탁된 권력으로 행복해지면 아니 된다는 말이다. 당선증을 받은 자가 권력을 사유화하는 순간, 우리들 국민 모두는 진정한 불행의 악몽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증 아래 화사한 빨간 장미가 선홍빛 핏빛을 띄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을 염려하는 때문은 아닐까? 유월의 장미꽃에서는 가끔 피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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