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을 보고자 김제에 내려갔다. 일이 바쁘다, 코로나다 해서 못 만난 지 한참이다. 가는 내내 차창 밖 넘어가는 풍경을 벗 삼아 잠시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어느새 김제역에 도착했다. 역까지 마중을 나온 지인과 반가움에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에 할 얘기는 수십 가지인데 입은 하나이니 서로 두서없이 말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허기짐에 서둘러 찾아 들어간 백반집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대체 얼마나 맛이 있길래 줄까지 서서 기다리나 했더니 착한 가격에 푸짐한 반찬과 무엇보다 집밥 같은 맛이 일품이었다. 특별한 맛을 보러 가는 것이 식당인데, 요즘에는 집밥과 비슷하면 감격스러우니, 세상 참 재미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묵은 얘기들을 풀어 치우기 위해 남원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콘도에서 키를 받고 숙소에 올라가자마자 이야기보따리가 풀리는데 요술 보따리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세상 사는 얘기를 하다가 나의 지인은 “선생님은 죽기 5분 전에 뭐 할거에요?”라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야죠.” 그리고 이어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도 해야 하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거봐, 사람한테는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라니까.”라며 내 무릎을 쳤다.

그녀가 말하길 이 질문을 했던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왜 갑자기?”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은 돈도 벌 만큼 벌어봤고, 잃어도 봤고 목표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몸이 부서지게 일도 해보고 온갖 세상일을 다 겪어봤지만, 결국 남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죽기 5분 전에 결국 제일 하고 싶은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그걸 못하고 살잖아요.”라고 말했다. 새삼스럽지 않은 얘기인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이어갔다. “살면서 돈이나 명예 그 밖에 많은 욕심에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본인은 힘들게 살지만, 결국 남는 건 사랑밖에 없는데 이걸 모르고 다들 헛되게 사는 것 같아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등 뒤로 열어 놓은 테라스을 타고 들어 온 산바람이 시원했다.

비단 사랑한단 말뿐일까?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제때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 삶인 것 같다. 정말 하고 싶던 일 해야 할 일이 아닌 무엇에 사로잡혀 서로 끌려 다니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상담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남보다 잘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잘못될까 봐 걱정되어 일일이 잔소리를 하지만, 그의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고 부모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각자의 상처를 부여잡고 자녀를 위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부부도 많았다. 사랑해서 평생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결혼했지만 사랑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다른 것들이 올라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남과의 비교도 한몫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불행해지는 것이다.

삶에 지치고 혼란스럽다면 이 질문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5분이 남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