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금방 미용실에서 나왔나 보다. 머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몸은 동그랗고 조막만 한 가지색이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뽀골거리게 파마를 한 것처럼 촌스럽지만 마냥 사랑스럽다. 천원이 겨우 넘는 가격에 팔려 나가던 콜라비가 살림을 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녀 시원한 곳에 자리를 마련해주자 보답하듯 꽃을 피웠다.

이런 시골스러운 상점에 출근 도장 찍듯이 낡은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어르신이 계시다. 하루가 다르게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가시는 속도는 가속이 붙었나 보다. 그분의 자전거가 언덕배기에서 내달리는 것처럼 아찔하다. 처음 뵈었을 때만 해도 과일을 직접 챙겨 드셨었는데 요즘은 사다 놓고 먹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신다. 핑계 삼아 못난이 과일을 깎는 시범을 보여 드리며 맛보시게 했다. 어찌나 맛나게 드시는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 만족해하셔서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어르신도 핑계를 대며 가방을 뒤져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억지로 쥐어주신다. 사양하면 할수록 서운해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다.

천원의 가치는 어릴 적 백 원이나 되려나. 과자 한 봉지도 사기 어렵다. 하지만 어르신이 주신 천원은 요즘의 가치와는 전혀 다름을 알고 있다. 치매를 앓으시니 당신이 손주들에게 주던 용돈의 크기로 인지하고 계실 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과분한 마음이 든다. 그것과 내 주머니를 털어 동료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다. 그분의 어두워지는 기억들을, 그럼에도 혼자 사시는 것이며 자전거를 타고 위험하게 마을을 벗어나는 것을 걱정한다. 돌보아 드릴 가족은 없는지 어머니를 홀로 고향에 계시게 했던 전력이 있던 나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손맛 좋은 지인이 김치를 담가 주었다. 집에는 김치가 넉넉하여 어르신께 드리기로 했다. 우선 보여드렸더니 파안대소하신다. 대신 돈을 주시면 다시는 안 드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굳게 다짐까지 하시더니 다음 날 잊지 않으시고 비워 낸 통에 사탕 몇 알을 담아 오셨다.

다시 콜라비의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싱싱한 콜라비의 가격은 천 원 남짓이었다.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담겼더라면 건강한 밥상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김치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야식을 참아 내느라 애쓴 중년의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하고 혈관을 지켜 냈으리라. 하지만 그러지 못하였다고 콜라비의 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꽃을 피워내 사람들의 눈으로 들어가 가슴에 살포시 앉았다. 은은한 향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어르신에게 받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그렇다. 특별히 살 것 없어 보이지만 그걸 모으니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때는 열정을 다해 살아 낸 어르신의 삶처럼 싱그럽던 콜라비꽃이 시무룩해졌다. 양분을 다 빨아 먹었는지 몸도 탄력을 잃고 꽃은 회색빛이 감돈다. 시든 콜라비와 어르신의 모습이 왜 겹치는지 모르겠다. 이 빠진 언어들이 버퍼링이 생긴 것처럼 머뭇대어서일까.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지는 기억의 안타까움일까.

김치통 속에서 꺼낸 사탕을 동료들에게 건네며 머지않은 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본다. 어르신과 나누는 이웃의 정이 어쩌면 나의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받는 따뜻함이길 바란다. 부메랑 같은 천원의 가치이길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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