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단기지계(斷機之戒),끊을 단(斷), 베틀 기(機), 갈 지(之), 경계할 계(戒)자를 쓰는고사성어다. 한마디로 '베틀의 베 끈을 끊어 경계한다'는 뜻이다. 학문이나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고 경계할 때 많이 쓰인다.

맹자와 관련한 일화에서 생겼다고 한다. 한 나라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도 나온다.  맹자 어머니는 자식이 편모슬하에서 커 예의와 교양이 모자란다는 말을 들을까 봐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하루는 맹자가 집을 떠나 멀리 유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맹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왔다. 베를 짜고 있던 어머니는 "공부는 어떻게 끝을 마쳤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어머님이 뵙고 싶어서 잠시 다녀가려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맹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칼을 들어 베를 잘라 버렸다. 베틀의 북과 잉앗대가 바닥으로 흐트러져 떨어졌다. 놀라 당황해하는 맹자에게 어머니는 "네가 공부를 도중에 그만두고 온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다 마치지 못하고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라고 꾸짖었다.

맹자의 학문 열기가 식은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짜고 있던 베를 칼로 끊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맹자는 학문에 정진하게 됐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맹자의 교육을 위해 맹자 어머니가 노심초사한 일화가 많다.

교육에 좋은 환경을 찾아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도 유명하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처음의 뜻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지일관과 같은 말이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고통을 참아내어서 해내고 만다는 뜻의 견인불발과도 통한다.

새 정부 들어 한국 대표기업들이 수백조 원을 투자하고 십 수만 명의 신규인력을 고용하겠다는 청사진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에 한 투자와 고용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중도에 흐지부지 안 되게 단기지계를 늘 심중에 품길 바란다. 재계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돈 보따리를 화끈하게 풀고 있다. 삼성·현대차·롯데·한화·두산 등 5개 그룹은 향후 3∼5년간 593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정부의 본 예산(607조7,000억 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SK·LG 등 나머지 주요 기업들도 조만간 투자 대열에 합류해 전체 투자 규모는 더 불어날 전망이다. 이런 동시다발적 투자는 드문 일인데 윤석열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국내 미래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 450조 원을 쏟아붓는데 이 중 80%가 국내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도 8만 개가 새로 만든다고 한다. 현대차 그룹도 국내 전동화·로보틱스·자율주행 등에 63조 원을 투자한다. 롯데는 바이오와 모빌리티를, 한화는 방위산업·미래 에너지를, 두산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신규 투자 분야로 꼽았다.

대내외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악재 탓에 고물가·저성장 위험이 커지는 마당에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다. 이런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기업 투자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건 정부의 몫이여 이제는 정부가 화답할 차례다.

따라서 정부는 세계 최고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바꾸는데 비상한 각오가 요구된다. 그러려면 정부는 올 7월 세법개정 때 법인세율을 대폭 내리고 과표 구간도 선진국 수준으로 축소해야 한다. 기업 발목을 잡는 불합리한 규제나 노동 편향 정책을 제거하는 일도 시급하다.

그리고 법과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도 있다. 과거 논의됐다가 중단된 규제개혁특별법은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 더욱 절실하다. 새로운 기술은 쏟아지는데 이를 가로막는 규제조항이 개별법 곳곳에 널려 있다.

가령 현행법으로 드론 하나를 띄우는 데 적용되는 법률만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법률 1,300여 개 중 규제조항을 담은 법률이 800개 이상이라고 한다. 규제개혁특별법이 제정되면 여러 행정기관이나 법령과 관련된 덩어리 규제를 일괄 정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자유주의의 승자독식이 여러 가지 폐단을 불러오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서 비롯되었던 자본주의의 근간에 더는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고사성어에 나오는 '단기지계(斷機之戒)'처럼 중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유야무야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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