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이번 여행 단합대회의 드레스코드는 보라색이다. 이런저런 공지 내용으로 단체 대화방의 알림음이 수시로 울려대는데 그 알림 소리마저도 음악 소리처럼 즐겁게 들린다. 이미 마음은 보랏빛 향기를 가득 채운 풍선처럼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 무슨 황혼의 늦바람이람!' 몰래 하는 사랑이라도 하는 사람마냥 때로는 혼자서 은밀하게 웃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마음도 태웠다. 나의 늦바람을 함부로 발설하기에는 언감생심 주책맞기도 하였다. 그 상대가 서른 살의 풋풋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 오롯이 열중한다는 것은 분명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랑에는 권태기도 오는 법이건만 이 지독한 사랑은 권태기도 없이 한결같다.

오늘 여행의 만남에서는 그 은밀한 사랑을 마음껏 발설해도 되는 날이었다. 젊은 남자 성악가인 한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명 '아리스' 들의 만남이었다.

테너 가수 김호중의 노래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실력은 출중했지만 정통 클래식으로 스타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는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트로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그의 노래를 듣고, 하나 같이 그 순간에 시선이 고정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류이었다. 성악이 베이스에 깔려있던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귀에 꽂히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트바로티 김호중으로 부르게 되었다.  

트로트 오디션에 참여하며 애써 적응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왔었다. 거기까지 오는 길에 그의 고뇌가 매 순간 느껴져서 연민의 마음이 생겨났었다. 심사석에 앉아 있는 유명 가수들도 그의 실력과 진면목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었다. 오히려 수준이 높은 시청자들의 매와 같은 눈들은 그를 주목했었다. 학연 지연 인맥으로 다져진 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다가 다다른 곳이었다. 독일에서 정통으로 성악 공부 유학을 하고 온 그가 지방의 동네 축제에서나 노래를 하고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음악도였었다. 깊

은 어둠속에서 별은 더 빛난다고 했던가! 모난 돌이었던 그를 빛나는 보석으로 잘 세공을 해주신 그의 스승을 만나러 떠난 길이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어둠의 세계로 빠질 뻔했던 그를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렸다. 그를 본 듯이 반가웠다. 그가 꿈을 펼쳤던 학교의 푸른 교정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보랏빛 아리스들의 향기로 가득했다.

진정한 예술은 대중의 사랑과 박수를 받을 때 비로소 예술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아서 기쁨과 감동을 준다면 최고의 예술이고 훌륭한 아티스트이다. 그의 노래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적인 내면의 철학이 담겨있어서이다. 십만 대군의 팬덤을 이룬 그는 수많은 엄마 아리스들에게 곰신(군대간 애인을 기다리는)을 신겼었다. 오매불망 제대 날짜를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를 따라다니던 오빠 부대들은 저리가라다. 엄마 아리스 부대들은 그의 공연 일정표를 보고 티켓팅에 전력투구한다. 이제 남편의 세끼 밥 따위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집안의 경제권도 장악하고 있는 나이니까 무엇이 두려우랴! 플라시도 도밍고와 부산에서 협연도 하고 안드레아보첼리와 콜라보도 한다니, 엄마 아리스들은 공연장 찾아서 삼만리 철원으로 잠실로 이어서 부산을 찍고 조만간 멀리 카네기홀까지 비행기를 타야할 판이다. 늦바람이 무섭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