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현재 일부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경영현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연공제 임금제도 하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운영된다. 즉, 개인의 근속년수가 늘어나고 노화되면서 성과는 떨어지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의 증가에 비례해서 성과가 반드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갈수록 신체적 나이가 젊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인해 일률적으로 나이를 정하여 임금피크를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법률적 해석이 내려진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노동계를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도 무효화 내지는 폐지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기업과 가계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것은 전체 국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닥칠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난 정부에서 검토되다가 만 직무급제의 도입을 고려할 때이다.

실제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인 단체들은 직무급 임금제도 도입을 다시 공론화하고 나섰다고 한다. 직무급제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중요도가 낮은 직무수행자의 장기근속으로 인한 임금인상이 결국에는 조직에 대한 엄청난 비용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비하여 추진하다가 노동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실행되지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바꾸는 일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담보하고 청년들에게 직업의 기회를 확대해주기 위한 바람직한 조치이다.

직무급이란 일반적으로 동일노동·동일임금(equal for equal work)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미국식 임금체계이다. 숙련도, 곤란도, 직무환경, 책임 등 다양한 직무요소들을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어렵고 중요도가 높은 순서대로 임금의 크기를 달리한다. 미국은 직무급을 70%, 성과급을 30% 정도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직무급은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지탱해주고 있는 중요한 축이자 그들의 생활철학이다. 직무급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직무의 상대적 중요성을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 이유는 도입하고자 하는 직무급제의 형태에 따라 평가의 방법이나 유형이 달라져야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직무분석, 직무평가, 그리고 임금제도의 확립이라는 일반적인 순서와는 반대로 직무급체계를 먼저 확립하고, 그 다음에 직무평가와 직무분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시행하기가 어렵다.

사회 전반에 직무급이 순조롭게 도입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나 공기업 등에서 먼저 도입하여 모범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검사들의 임금체계도 조정하겠다고 한다. 임금이 특권과 연계되어 있는 사회는 후진국이고 미개한 사회이다. 임금은 분명히 노동과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 요인이어야 한다. 임금이 나이나 특권에 대한 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진국들이 알려주는 사회통합의 교훈이다. 새 정부가 경제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직무급제의 도입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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