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 주었다. 그 추운 겨울 날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밝히며 탄생시켰는데 맥없이 정권을 내 놓았고 상당시간 멍하니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와중에도 현 정권이 오래는 못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난 5.18에 대통령과 여당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광주에서 ‘산자여 따르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기차로 내려가면서 악보와 가사를 다 외우고 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워낙 기대치가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현 정부를 보는 눈이 아주 조금은 바뀐 게 사실이다. 칼럼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효불효교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시집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 마지기가 전 재산입니다. 정신없이 시집살이하는 중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부엌일에 농사일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 지 비몽사몽간에 일을 치른 모양입니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습니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늘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습니다.

열여섯 큰 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 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습니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하나 못 움직이게 했습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 달 만에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입니다. 베개를 부둥켜안아 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유씨는 범골 외딴 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와 눈이 맞았습니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습니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 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 뼈를 사다 고아 줬습니다.

며칠 후 유씨댁은 걸을 수 있게 되자 또 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습니다. 유씨댁은 놀랐습니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습니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랍니다.

◇민초들의 마음

사실 민초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 현 정부가 정말 국가와 우리 민초들을 위해 준다면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라고 해도 어미를 위해 다리를 놓아주듯이 현 정부를 위해 기꺼이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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