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유월의 바람 한 줄기, 흐르는 땀을 시원하게 날려준다. 더위도 살라먹은 호미질에서 잡풀이 성성하던 밭골이 정갈해졌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다 보니 작은 밭을 가꾸는 일도 쉽지 않다.

고추, 파, 상추 등을 몇 포기 심었다. 어린 묘를 정식할 시기에 일교차가 크다보니 어린 묘들이 땅으로 뿌리내리기가 힘들었던가, 몇 몇은 시들시들 말라가더니 흙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들을 살려 보려고 물과 영양제를 뿌려줘도 소용없었다. 손바닥만 한 밭에 상추 한포기 키우는 일도 쉬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뿌리 내리고 자신의 삶을 지탱해 가는 일이 쉽지 않음은 작고 여린 식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희망이 속삭였는데 놓쳐버린 빈자리로 바람만 서성인다. 밭골에 드문드문 난 자리가 서운하여 어린 묘를 구해 다시 심었다.

해맑은 햇살이 여린 잎에 입맞춤을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연록의 여린 잎이 살랑 거린다. 마치 춤사위 같다. 연신 꽃을 피우고 조롱조롱 달리는 고추도 기쁨과 환희를 전이시켰다.

유월의 바람으로 자라는 그들을 보듬으며 그들을 닮아간다. 살아가는 모든 일에는 부족함 없는 정성과 사랑이 스며야 된다는 것을.

이른 새벽, 우리 가족에게 아낌없이 건강한 맛을 주는 작은 밭의 식구들이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 주었다. 온 몸으로 땀이 흥건하다. 생경한 일이어서 힘들지만 마음만은 흐뭇했다. 그 사이 아침 해가 고요한 새벽을 걷어낸다.

풀숲에 묻혀 보이지도 않던 녀석들이 확 트인 고랑에서 신이 났다. 여린줄기로 바람과 맞선다. 활기차 보인다.

집과 가까이 있지만 울타리나 담밖에 있는 작은 밭을 ‘텃밭’이라 하고, 담장이나 울타리 안에 있는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찬거리가 될 만한 채소 따위를 가꾸는 땅을 ‘터앝’이라 한다.

작은 땅에서 서툴게 키워 낸 채소의 싱싱하고 아삭아삭한 식감, 상큼하고 정갈한 맛에 흥분 된다. 마트에 가면 여러 가지 야채가 차고 넘치지만, 밭에서 막 따 온 채소의 식감과 맛의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방 뜯어 온 야채로 끓여 낸 된장찌개와 상추쌈의 맛을 어느 유명 요리사의 요리 맛에 비교할까!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아기자기한 정을 느끼며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시간에 건강한 식사는 우리의 자양분이며 행복의 근원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의, 식, 주에 필요한 물품들이 차고 넘친다. 필요 할 때 마다 어렵지 않게 해결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의 문화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 편리함이 스며들었다. 퇴근길에 밀 키트를 사오는 일이 잦아졌다. 빠른 시간에 허기를 채울 수 있고 맛도 괜찮다. 하지만 배는 부른데 무언가 허전하다.

느리게 가던 시절의 시간이 좋았다. 많이 부족해서 고프던 시절이지만 그 때가 그립다. 청춘의 시간이었기에, 아니면 다시는 돌이 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런 것일까, 되묻다가 잠자던 뇌를 깨웠다. 출근을 하려다 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물뿌리개와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향한다.

시대의 시간 속을 벗어나 푸른 하늘 밝은 햇살아래서 새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풀밭을 거닐고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자연의 시간 속에서 느리게, 느리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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