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스님·명예 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전여담에 죽두목설(竹頭木屑) 이란  말이  있다. 
대 죽(竹), 머리 두(頭), 나무 목(木), 가루 설(屑))자를  쓴다. 한자 풀이로는 대나무 조각과 톱밥을 비유한 뜻이다. '별로 쓸모 없고 하찮은 것인데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라는 것을 표현한 사자성어다. 

중국 동진 시기 도간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대나무 조각과 톱밥을 모아두었다가 긴할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위·진 시기 명사들의 일화를 엮은 소설 '세설신어·정사'와 역사책 '진서' 도간전에도 실려있다.

 도간이 형주자사로 있었던 어느 해, 병선 몇 척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종종 건조 현장을 시찰했는데 톱밥과 대나무 조각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톱밥을 다 모아서 관청 재산으로 등록하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뒤에서 비웃었다. 

어느 날, 폭설이 내린 후 녹으면서 관청 마당이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도간은 모아두었던 톱밥을 마당에 뿌리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다니기가 수월해졌다. 

도간은 대나무 조각들도 유용하게 썼다. 후에 환선무(환온)가 촉 땅을 정벌하기 위해 급히 배를 만들어야 했는데 대나무 못이 모자랐다. 도간은 모아놓았던 대나무 조각들을 기꺼이 내주었다.

대나무 조각들은 모두 못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덕분에 환선무는 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던 대나무 조각과 톱밥이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도간은 가난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후 그는 도독팔주제군사까지 올랐고 장사군공에 봉해지기도 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중하게 여겼던 그의 성품 덕분이었다. 도간은 중국의 유명한 전원파 시인 도연명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얼마 전 국민의 일꾼을 새로 뽑는 전국 지방 선거가 끝났다. 그중에는 새로운 인물들도 눈에 띈다. 역사상 위대한 정치가들은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에 숨어 있다.

정치인이라면 '죽두목설'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참 정치인,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들은 절대 정치가가 좇는 이념만 보고 표를 주지 않는다.

정치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문제가 안 된다. 관심은 '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에 관심이 높다. 세상은 점점 비전이 확실하고 분명한 정책을 가진 정치가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되고 있다.

꼭 현명하고 똑똑한 이들만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 같지 않다. 어느 편을 찍을지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권력을 지닌 이를 반대하는 쪽에 표를 던질 테니까.

단지 오래되었고 권력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미움을 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까닭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꼭 정의로움만이 승리하지는 않는다. 정치는 사람을 다독이는 일이다. 인간의 영혼은 선과 정의로움, 평화를 좇는다.
   
정치기술자는 금방 쓰러지지만, 도덕주의자는 영원히 살아남는다. 정치가 도덕과 이상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정치는 죽두목설(竹頭木屑) 의 고전여담처럼 어느 때 어떤  일로 무슨 역할을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세상에 쓸모없고 못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저마다 자기답게 피어날 줄 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정치는 그 마음들을 모아 싹 틔울 수 있는 커다란 숲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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