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의 올해 수상자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 경이 선정되었다. 템플턴상은 2008년에 작고한 영국의 금융가 존 템플턴 경이 1973년에 제정하였다. 상금은 1백만파운드(약 18억원)이며,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의 영적 진보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초창기에는 테레사 수녀, 빌 그레이엄 목사 등 종교인들이 수여자였는데, 최근에는 과학자들에게도 종종 수상한다. 1995년에는 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가 이 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양자전기역학을 통일시킨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수상했다. 올해 수상자인 마틴 리스 경은 '태초 그 이전', '여섯 개의 수' 등의 과학저술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제공하는데 앞장서 온 과학자이다.

종교와 과학의 오랜 갈등을 생각한다면, 이 상을 과학자에게 수여한다는 것은 화해의 의미로 볼 수 있다. 1633년에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 약 360년이 흐른 1992년에 교황 요한 바로오 2세가 그를 사면함으로써 처음으로 종교가 과학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그런 용기를 보였던 요한 바로오 2세는 올해 복자로 추대되는 영예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 주위를 해와 달이 돈다는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은 때늦은 감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 깊은 영역이 있다. 바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부분이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 역시 자신이 가진 종교와의 갈등과 신심이 깊었던 부인 때문에 진화론의 발표를 미루었다. 그러다가 윌러스라는 젊은 과학자가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진화론을 적은 논문을 다윈에게 봐달라고 보내는 바람에 50세가 되던 해에 진화론을 발표하였다. 22세에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에서 발견한 핀치새의 부리로부터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한 지 무려 28년이 지난 후였다.

이러한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기 때문에 리스 경이 템플턴상을 수상한 것을 많은 과학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어떤 과학자는 템플턴상이 '큰 상금으로 과학자를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수상 논란을 자초함으로써 이름을 알리려는 템플턴 재단의 광고전략'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리스 경을 '비열한 배신자'라는 비난하였다. 더구나 지난해 템플턴상 수상자인 아얄라 교수(uc 어바인 대학교 생물학과)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 "학교 과학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하여 과학자들의 분개를 샀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공격에 리스 경은 자신이 올곧지 못한 타협주의자이며, 예배에는 기꺼이 참석하지만 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 무신론자임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국소적인 문제에만 매달리느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모르는 과학자들의 문제도 따끔하게 지적하였다. 그리고 다윈이 자신의 갈등을 친구에게 편지로 쓴 다음의 글을 인용하였다. "개가 뉴턴의 머릿속을 짐작하는 일이 더 쉬울 정도로 인간의 지능에 비해 자연에는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이 많으니, 모두가 각자의 신념대로 살아가게 두자."

리스 경은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도 종교를 인정했는데 오늘날 다윈주의자들은 오히려 다윈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헐뜯지 말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과학시간에 종교와 진화론이 서로 모순된다는 완고한 입장을 제시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오히려 종교에 집착하거나 과학을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그리고 파괴와 학대를 일삼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주류 종교와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어쩌면 과학 만능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오늘날, 당대의 뛰어난 과학자로서 종교의 관점도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리스 경의 열린 사고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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