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호랑이 장가가는가 보다. 햇볕은 쨍쨍한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자 흙냄새가 빗줄기 따라 올라온다. 비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면 하늘은 언제 그랬냐며 청명하지만 후텁지근한 기운이 휘감는다.

건조한 봄을 견디어 낸 나무들이 잎사귀를 축 늘어뜨리고 여름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어 줄 듯 하다가 얄궂은 장난을 치기 일쑤였다. 바람은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곧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지 않으면 어디론가 날려 보낼 것 만 같았다. 그 바람이 온 동네의 쓰레기를 몰아온다. 한쪽 귀퉁이가 깨져나간 스티로폼, 생선을 쌌던 비닐, 젖은 종이 상자, 그리고 지난해 나무에서 떨어져 아직 거름이 되지 못한 나뭇잎 하나까지 회오리 속에서 돌고 돌아 현관문 앞에서 파닥거린다.

얼마나 긴 여정 끝에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달나달해진 것을 차마 쓸어 내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절대적인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의 위태로운 삶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왔다. 요즘 들어 삶으로부터 느껴지는 아득함과 빗대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벗어나려 하면 더욱 옥죄어오는 올무에 걸린 짐승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형틀에 매인 기분이다. 어처구니없지만 한여름에 한기가 폐부 깊숙이까지 파고든다. 솜이불이라도 꺼내 덮어야겠다.

인생의 폭풍전야가 아니었으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따뜻하게 인사하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를 오래전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고향이 이웃이라 반가웠다. 일터에 매인 나에 비해 여기저기 다니며 재미난 소식을 전해주어 심심할 새 없었다. 그에게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을 만큼 벌어주는 남편이 있고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 적을 두었던 자랑스런 딸이 있다. 하지만 신은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부여하지는 않나 보다. 안타깝게도 건강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를 지탱해주는 긍정의 힘은 사람들에게 오롯이 전해진다. 이웃에게 한없이 정겹다.

그런 그를 보고도 좀처럼 이해심이 많거나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열 손가락을 다 써가며 이해타산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득까지는 아니어도 손해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일까. 내 안에 무엇이 이토록 그와는 다른 결로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요즘 날씨처럼 고약한 사람의 욕심으로 탄생 된 용품들도 쓰여지고 나면 가차없이 버려진다. 진정 소중함을 잊은 인간에게 버려진 채 바람에 몸이 맡겨져 세상을 떠돌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집 대문간에 몸을 뉘기도 한다. 이제 끝내고 싶은 고달픈 삶이다. 자신을 놓는 것도, 결코 자신을 온전히 놓지 않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 할 수 없는 그들이다. 나의 삶도 가끔은 그렇게 불가항력적이다.

툭하면 호랑이가 장가를 가더니 오늘은 장마 속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빗줄기가 어찌나 거센지 어느 마을은 길이 끊기고 산이 내려앉았단다. 열대야로 밤은 길고 낮은 쇠죽이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앉은 것처럼 뜨겁다. 이 시간이 지나면 열매는 맺히고 과육은 달큼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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