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장마철을 앞두고 연일 푹푹 찌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유난히도 심했던 봄가뭄에 이어 때 이른 폭염에 시달리다 보니 장맛비라도 기다려졌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태풍 소식이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 해상에서 북상 중인 제4호 태풍 에어리(AERE) 때문에 걱정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소형급 태풍 에어리는 7월 4일 진로를 변경해 일본 규슈를 향할 것으로 예측되어 우리나라로서는 다행이었다.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나라로 큰 태풍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태풍 에어리는 미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폭풍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태풍 이름은 개미. 제비. 나리. 나비, 장미 등 유순한 동식물 이름인데, 에어리는 폭풍이라니 미국에서 작명을 잘 못 한 것 같다.

태풍 에어리가 일본 큐슈로 향하고 있다는 그날 오후 늦게 산책길에 나섰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갔다. 명암저수지 방면의 소공원에 있는 각종 운동기구 덕분에 몸도 마음도 튼튼해진다. 집을 나선 지 30여 분 지났을 때 빗방울이 몇 번 떨어져 장난꾸러기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더니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급한 김에 사거리 부근에 있는 커다란 그늘막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라서 곧 그칠 줄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소나기가 아니라 몹시 세찬 바람이 불면서 쏟아지는 폭풍우라서 사방에서 장대 같은 비가 들이치고 철석같이 믿었던 큰 우산(그늘막)은 옛날 허술한 초가집처럼 비가 샜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것은 감수하더라도 핸드폰 젖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몇십 년 전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무렵, 냇가에 갔다가 옆 사람과 수다 떠느라 반바지에 핸드폰을 넣은 채 냇물로 들어간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중에 핸드폰을 무심코 작동시킨 탓에 수리점에 가서도 안 되어 새로 샀던 일도 떠올랐다. ‘이럴 때 비닐봉지 하나라도 있었으면…….’ 아주 사소한 물건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아내에게 가까스로 전화하니, 핸드폰은 집에 두고 우산을 갖고 나온다고 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에 철벅거리며 집 쪽을 향해 걸었다. 핸드폰을 모자챙 아래에 들었어도 물이 들어갈 것 같아 급한 대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섰지만, 그곳도 폭풍우가 들이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기예보도 맞지 않고, 나는 한두 시간 후 날씨도 모르다니…….’ 생각하며 야속한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인기척이 있어 옆을 보니 어느 청년이 “우산 씌워드릴까요?” 하는 게 아닌가. 무척 반가웠으나 미안해서 사양하니 또 권유해서 함께 썼다.

“옷은 이미 다 젖었지만 핸드폰이 젖을까 걱정이네요.”하며 그 청년과 함께 우산을 쓰고 교감하니 무척 고마웠다. 학생이냐고 물으니 충북대학교 학생이라고 했다. 필자의 아들도 그 학교를 나와서인지 반가운 마음에 대화하면서 요즘 젊은이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확증 편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로 이기적이고 주위의 어려움 따위는 신경 안 쓰고, 나 같은 노인들과 대화조차 꺼리고 백안시하는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노인 공경은커녕 부모 공경도 잘 모르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른들에게 문의했는데, 지금 사회 추세는 어른들이 젊은이에게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청년은 참으로 바르고 착해 가정교육도 잘 받은 것 같고, 돋보이고 귀감이 되는 것 같았다.

폭풍우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 삶에도 폭풍우처럼 난관이 있을 때는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지역과 이념 갈등에 이어 성(性) 갈등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세대 갈등일지도 모른다.

이제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는 사용 어휘는 물론 사고방식마저 달라진 것 같은 우려도 앞선다. ‘후진국 시절 조부모와 개도국 시절 부모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키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가 아닌가. 나이 든 세대는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모범을 보이고, 때로는 자녀나 청소년이 잘못하면 충고하고 선도하던 대쪽 같은 어르신의 역할이 절실하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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