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토끼 토(兎), 죽을 사(死), 개 구(狗), 삶은 팽(烹)자를 쓰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가 있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용감하고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의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범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구천을 보좌한 명신이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 나라를 빼앗기자, 충신 범려의 진언에 따라 빼어난 미인 서시를 부차에게 바치면서 항복을 청하고, 오나라로 가서 부차의 하인이 되어 열심히 부차를 섬겨 방심을 유도하여 다시 월나라로 돌아온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와신상담하며 착착 국력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부차가 출타한 틈을 타서 침략을 단행한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은 월나라의 수도를 현 장쑤성 연운항으로 옮기고, 제후들을 모아 중원의 패자(霸者)가 된다.

중원의 패권을 쥔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강대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범려는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으나 낙(樂)은 함께할 수 없는 구천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핑계를 대고 은둔하여 월나라에서 탈출했다.

제나라로 은거한 범려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문종을 염려하여 '새 사냥이 끝나면 활이 필요 없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했다. 그러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고사에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토사구팽의 뜻과 같이 날렵한 토끼를 잡는 사냥터에서는 충직하고 용감한 사냥개가 최고이며, 이때는 험난한 산속을 누비며 고생을 함께 한 동지로, 고생(苦生)은 물론 부귀영화(富貴榮華) 또한 평생 함께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부질없고 허망한 꿈이다. 물론 인간들이 구천처럼 다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는 않다.

인간의 심리가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도 있지만 이기적인 면, 악한 면도 각자가 처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덧없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온전히 상대방을 믿고 의지하며 모든 것을 기대는 순간 위기는 찾아올 수 있다. 상대는 그런 허점을 파고들어 악용하게 되고, 방심한 사이 당하게 된다.

개인이 이럴진대, 여러 사람이 모인 조직이나 사회단체는 어떨까. 특히 정치 권력의 획득을 수단으로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집단적 조직인 정당에서는 과연 이런 일들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어떻게 일어날까?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19년 7월 추적단 불꽃이라는 페미니스트 언론 단체를 만들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을 공론화 하는데 앞장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2022년 3월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되어, 26세에 일약 야당 대표되었다. 그는 젊은 세대,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그리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쇄신안을 제안했으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결국은 2022년 6월 1일 선거에서 참패하여 다음날 새벽 지도부 총사퇴를 결정해 사퇴했다.

하지만 선거 패배 책임을 부정하며 당대표 선거 출마 의지를 피력했으나, 더불어 민주당으로부터 '피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전당대회 출마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은 당권 도전이 좌절되었다.

​ 경제 불황과 2030세대와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탄생한 30대 국민의힘 당 대표 이준석, 중장년들이 장악한 정치판에서 경선을 통해 돌풍을 일으키며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파격과 기대, 국가경영구조에 청년층으로 정치교체가 이루어지는 듯 국민들에게 한때 희망을 품게도 해주었다.

젊은 당 대표는 보수정권을 되찾는데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속 승리를 이끌어 정권교체의 단초를 마련하게 되나, 역풍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당대표가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중징계에 의한 직무정지로 사실상 국민의힘에서 대표직을 내려놓고, 퇴출당하는 지경에 이르는 한국 정당 역사상 집권 여당 대표가 중징계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37)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26)은 최근 선거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나란히 치명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중장년층들이 장악하고 있는 노련한 정치권이 선거 때만 되면 젊은 청년층들을 이용했다는 비판과 함께 청년 정치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나 두 거대 정당의 속사정이야 내부에 있는 사람들만이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가슴앓이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했던 젊은 대표들이 물러나는 형태는 영락없는 토사구팽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와 승패에 관계없이 결국은 토사구팽 당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국민들로서는 정치권의 비정함이 두렵고 암울한 한국 정치의 낙후성에 또 다시 좌절하게 되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범여의 후손들이 만들었다는 범가호장 서시호에 보이차를 우려 마시며, 토사구팽을 생각하니, 오늘따라 참으로 지혜로운 이들의 안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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