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여름 장마철에 내리는 비는 그래도 퍼부어대야 제 맛이라고 하던데, 오늘은 제법 굵은 빗줄기가 창을 두드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창가에 섰다. 여름비는 때려야 제 맛이다. 여름 장맛비의 기억은 달구어진 한여름의 대지를 시원스레 식혀주던 그런 존재로 남아있다. 신작로 길이 포장되기 전에는 소나기는 늘 흙먼지 일으키며 까맣게 질려버린 들판과 신작로를 무섭게 두드려오고는 했다. 창밖에는 한여름이라 그런지 길 위에 사람들이 듬성듬성하다. 길 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구름이 끼어 있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모처럼 싱그럽다.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여지없이 회색의 하늘은 빗방울을 내리 부어댄다. 비는 내리는데 비를 맞는 이가 없다. 대부분이 자동차 안에 숨어서 비를 쳐다본다. 우산이 귀하던 시절에는 늘 비를 맞고는 했다. 종이에서 비닐로 비료 포대가 바뀌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비를 가진 이를 덜 부러워하게 되었던 때도 있었다. 비를 맞아보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비는 맞아 본 사람만이 그 비의 즐거움을 안다. 요사이는 대부분의 움직임이 차로 이루어지는 자동차 시대에는 비 맞을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비에 젖어보고 싶은 때가 있다.

비는 소리를 낸 적이 없다. 비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소리를 듣는다. 비는 색깔을 띤 적도 없다. 비가 두드리는 모든 물체는 소리를 낸다. 빗소리가 아니라, 빗방울의 두드림으로 물체에서 나는 고유한 물체의 목소리다. 양철지붕 위에서 비오는 날 나는 소리는 양철지붕 소리가 난다. 같은 비라도 초가지붕에 내리는 비는 너무나 얌전하게 지붕 위에 내려앉는다. 비는 그러한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어느 단체의 장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이다. 또한 엄청난 희생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장의 자리에 앉기 위해 내는 소리는 엄청나게 시끄럽다. 어떤 이는 악을 쓰고 있고 어떤 이는 음흉한 계략을 모색한다. 교언영색! 평상시의 그와 다른 가면을 쓰고 소리를 낸다. 그러함에 속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사람의 인식이란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삶이 하루아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라면,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어느 조직에서 많은 구성원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구성원들의 이익을 가져다주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직의 일에 대한 수혜자가 구성원이 아니라 더 큰 조직인 경우에는 좀 더 다르게 바라다보아야 하지 않을까한다. 조직마다 형태와 특성이 다르겠지만, 백년대계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는 특히나 구성원만을 위한 정치행위는 자중되어야 한다. 교육기관은 그 목적이 현실에서 약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가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궤변일까? 그러한 연고로 교육기관의 장은 미래를 위한 교육의 방향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철학과 사명감을 최소한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도 지나친 요구일까?

편협한 생각과 이기적인 안목에서 시작하는 일들은 많은 이들에게, 아니 미래의 후세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이전에 다른 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장마철에 내리는 빗줄기처럼 주의의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가 아닌 그들이 소리를 내게 하여야 한다. 그럴 자신 없는 이는 교육의 장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왠지 비가 그립다. 장대비 같은 그런 비를 맞고 싶어진다. 비에 젖고 싶다. 비를 느끼고 싶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비를 걸어간다. 머리 위에 내려앉는 빗방울은 특이한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두개골 위에서 뛰어논다. 목덜미와 어깨 위에 내려앉은 빗줄기는 이내 서늘하게 등줄기로 흘러내린다. 아하! 비가 오는 구나! 비가 내리는 구나! 우산도 없이 들판을 걸어가던 기억들이 송골송골 가슴 언저리에서 피어난다. 그래 비는 보는 것이 아니었어! 비는 이렇게 맞아봐야 느끼게 되는 존재였어. 비는 내 목덜미에서 수없이 흘러내리던 그런 느낌이었어! 그런 부드러운 손길이었어. 비는 젖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존재였어. 그래서 우산 없이 걸어가며 몸으로 느껴보는 거야. 참! 오랜 만이야! 비야!

그런 빗줄기의 느낌을 많은 교육기관의 장에 출마하는 이들에게서 느껴보고 싶다! 이 장마철에 내리꽂는 장맛비로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그런 교육기관장이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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