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생전 처음 워터파크란 곳을 다녀왔다. 수백 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고인 물마다 몸을 담그고 각종 물놀이를 즐기는 곳인데 입장한 순간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저 물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물놀이장에 제 발로 와놓고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면 왜 온 것인가. 먼발치서 구경만 하고 가기도 모양새가 빠진다.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 반, 괜찮을 거라는 믿음 반으로 물과 함께 반나절을 보냈다.

그 후 며칠간 몸의 변화를 유심히 살피며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1주일 지난 지금 아무 변화가 없다. 하지만 다가올 매번의 위기마다 운 좋게 넘어갈 거라고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그전부터 주말이 지나면 월요일부터 수 삼일은 불안에 시달린다. 목구멍이 조금만 따끔거려도, 다른 날보다 체온이 높아도, 혹시 코로나19 증상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아쉬운 대로 자가키트로 검사를 하고 출근해야 그나마 안심이 되지만, 잠복기간이 있으므로 당장 증상이 없다고 마음 놓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증상도 다르다고 하니 이 방법도 부족한 최선일 뿐 믿을 것은 못 된다. 단지 아직은 우리나라 전체 확진자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그 점에나 위로받는다.

평소 같으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생기는 피곤의 증상쯤으로 여겼다. 공기가 나쁜 곳에 있으면 영락없이 편도선염이 생겼으므로 상비약 정도의 복용으로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전 세계에 코로나 팬데믹이 선포된 후 월요일 출근길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나도 인해 누군가가 감염의 피해를 받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누가 뭐라지 않아도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혔다. 평일은 일과 관계된 사람만 만나고 주말에도 되도록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단시간에 끝날 사태가 아님을 인지하고부터는 온전한 영혼의 호흡 통로를 찾을 요량으로 자연을 유일한 벗으로 삼았다.

가방 하나 덜렁 메고 혼자 기차를 타거나 낯선 곳을 찾는 횟수가 잦았다. 대신 되도록 사람을 피해 다녔고 자연과 가깝게 지낼 시간은 늘었다. 전남 보성의 어느 산사에 갔을 때는 때마침 매화가 피어 어두웠던 마음이 환해졌고 제주, 거제, 목포, 완도, 군산, 전주의 낯선 길을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았다. 이런 잠행의 시간 덕분에 오늘날까지 굳세게 잘 버틸 수 있었으니 건강한 생존력을 가진 나에게 고맙다.

지난 4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2년 1개월 만에 공표한 후 봇물 터지듯 사람이 몰려나왔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실내, 실외의 마스크 착용이 기존대로 유지되거나 조정되었어도 굳이 단서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마스크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않겠다는 각오가 몸에 배었다.

다시 하루에 확진자 수가 10만 명에 이를 거라는 예측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 주부터 재확산에 따르는 방역 강화 조처가 이루어지고 그동안 사라졌던 임시 선별검사소도 재설치되었다. 그토록 정치방역이라고 몰아세우더니 정부가 바뀌어도 달라진 것은 별반 없고 다만 황당한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국 5개 대학의 장례지도학과 재학생 380여 명을 시설에 파견하여 실습 근무를 하게 할 계획. 화장로 6기를 증설하고 안치 공간도 기존보다 652구를 추가 설치. 감기약 수급 대응 추진.’

이것이 그토록 외치던 그들만의 과학방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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