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어린 시절 무지개를 잡으려고 쫓아다닐 때가 있었다. 가도 가도 다가가지 못하고 간 거리만큼 멀어지던 무지개는 지금은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화가 ‘브뢰겔’이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 이라는 그림이 있다. 화폭 사분의 일이 하늘이고 나머지는 바다다. 바다는 고요하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가벼운 날개를 달고 태양에 가까이 날아갔다가 뜨거운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내려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신화의 주인공이다.

검푸른 바다에는 배가 떠있고 섬도 있다. 바다를 품은 언덕에선 목동이 양을 치고 있다. 화폭 속에서의 양치기는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비탈진 곳에서 농부와 소가 밭을 일구고 있다. 땀 흘리지 않고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한사람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검푸른 바다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깊이 또한 알 수 없다. 다만 가느다란 낚시 줄 하나 드리우고 있다. 세상으로 던져 놓은 시간을 향해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림에는 어부, 농부, 목동 세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네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그림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 한 생명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색의 막대기처럼 보이는 두 다리가 보인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카루스의 절규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 인간의 예기치 못한 재난 앞에서 모두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처얼썩, 철썩’ 가볍지도 둔탁하지도 않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파도는 적당한 간격의 시간차로 해안가를 드나들 뿐, 바다는 그저 과묵하기만 하다. 순리를 침묵으로 표현 하려는 것인가.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바다는 한결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머물다 가고 또 새로운 것이 머물다가는 시간의 굴레속이다. 막대기처럼 보이는 갈색의 두 다리를 보면서 삶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들여다본다.

나에게도 일상이 통째로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며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던 순간에 내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멘탈이 무너지자 밤이 지나도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암흑 속에서 몸부림치며 바라보던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도시의 밤거리, 네온싸인 간판은 화려하기만 했다.

세상은 개인의 운명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 인간이 절대 절명의 순간 앞에서 몸부림칠 때, 세상은 마치 이방인 같다. 세상은 개인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에 귀기울여주지 않는 것 같다.

며칠 전, 30대 청년이 내게 한 말이다. ‘요즘 직장 다녀서 돈 못 벌어요. 부동산이 최고예요. 제 아파트도 처음 살 때보다 2억이나 올랐어요. 저도 요즘은 그쪽에 관심을 조금 두고 있습니다.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잘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태양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 이카루스의 도전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세상 속에서 나라는 진실한 의미는 가느다란 갈색의 막대기로 존재하는 이카루스의 두 다리다. 태양을 향한 이카루스의 날개는 아름다웠다.

또 다른 비상을 향하여. 추락은 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 갈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장마가 끝난 칠월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태양은 더욱 더 빛나고.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