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스님·명예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한문으로는 무리 군(群), 닭 계(鷄), 하나 일(一), 학 학(鶴)이다. 닭의 무리 중에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한 마리 학이 끼어 있다는 의미다. 평범한 뭇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을 때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의 한자성어로는 학립계군(鶴立鷄群), 계군고학(鷄群孤鶴) 등의 고사도 있다. 이 말은 진나라 역사를 담은 ‘진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진 남북조시대에는 세상이 매우 혼란하고 혼탁하여 세상을 피해 산속으로 은둔하여 들어가 세월을 보내는 선비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었다. 죽림칠현은 산림에 은거하여 세상을 풍자하고 술과 문장으로 세월을 보낸 7인의 인물을 가리킨다. 그 중 가장 특출한 인물이 바로 혜강이었다. 그가 외모가 출중했는데, 특히 키가 크고 훤칠해 사람들의 눈길을 한목에 끌었다. 혜강은 특히 노장학과 양생술에 조예가 깊었고, 시문과 거문고에 능했다. 당시 권력자였던 대장군 사마소는 그런 혜강을 몹시 두려워하고 시기했다.

더구나 혜강의 부인은 조조의 증손녀라 위 나라 종실과 연이 있었다. 결국 사마소는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그를 모함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죽음을 당했을 때 그에겐 열 살배기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닮아 갔다. 혜소는 아버지처럼 풍채가 당당하고 빼어나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어느 날 혜소가 낙양을 방문했다. 혜소가 저잣거리에 나타나자 그를 본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혜소가 혜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떤 사람이 궁금한 것이 많아져 혜강의 친구였던 왕융을 찾아갔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잣거리에서 혜강의 아들 혜소를 봤습니다. 훤칠한 게 마치 닭 무리에서 학 한 마리가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융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자네는 혜소의 부친을 못 봤군! 그는 혜소보다 훨씬 뛰어났었다네."라고 귀띔을 했다.

이 고사 성어에서 나오듯 군계일학처럼 우리나라 국회를 떠들썩하게 한 고고한 학과 같은 선량(選良)한 국회의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국회는 하반기 원구성을 못해 두 달여 동안 개점휴업상태였다. 하지만 299명의 국회의원들은 일을 하지 않고도 꼬박꼬박 국민의 혈세를 받았다.

이런 염치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의 장기 파행과 관련해 “국민께 송구한 마음으로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300명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한 마리의 학을 발견하듯 눈길을 확 잡았다.

그야말로 '군계일학'과 같은 '양심선언'이었다. 상반기 국회가 끝난 지 두 달여 동안 국회에는 1만6000여 건이 넘는 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국회가 열리지 않았다. 의원들의 직무유기 덕분에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되지 않아 성장 동력이 멈춘 듯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힘없는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은 사지로 몰리고, 민생고는 바닥을 치며,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치르고 있는데 선량한 의원님들은 귀를 틀어막고 계시는 것일까?

여야 명분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선량한 국회의원들에게 당한 국회 공전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 자영업자들의 붕괴와 경제적인 위기 속에서 신음하고 죽어가는 민생(民生)보다 정치적인 실리와 당리당락이 우선이고, 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대놓고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지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제 성난 국민들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높으신 나라님들과 한없이 낮은 곳에 임한다는 국회의원님들에게 요구한다.

“일하지 않는 자, 세비 또한 주지 말자.”

국회의원의 월평균 세비는 한 사람 당 1천285만원 이다. 두 달 여 동안을 그냥 직무유기(職務遺棄)하고 있으면서도 뭉칫돈을 챙긴 것이다. 일반 기업체나 회사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이다. 선량한 국민들 눈에는 이런 후안무치한 집단이 어디 있을까?

​ 이제는 정말 국민들이 파사현정의 마음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차제에 어떤 이유이든 간에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여 일하지 않으면 세비가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정말 본연의 임무대로 오롯이 국민들을 위해서 국회에서 ‘진짜 노동’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최악의 위기사태를 겪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제는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사지(死地)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산업현장에서 죽어나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질 않는가?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국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데, 허울 좋은 국회의사당이 무색하게 개점휴업 상태였다니 이게 말이 되겠는가? 국회 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에는 당연히 의원들의 세비를 반납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을 위해서 일한다는 높으신 의원님들이 국민들의 혈세인 세비를 꼬박꼬박 챙겨가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국회의 장기 파행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밝힌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보인 국민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조무래기 닭의 무리 중에 한 마리 학이 끼어 있는 듯 선량한 모습을 발견한 듯 군계일학처럼 보이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대한민국의 국회이고, 정말 한심스러운 국회의원들이다. 결국 생계형 국회의원들이었던 것인가?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들이 선거 때만 등장하는 표 구걸 구호였던가. 의원들의 존립을 위해서도 이제는 정말 '책임 정치'를 실현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일 잘하는 국회의원들을 보여주어야만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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