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세상을 살다 보면 아리고 쓰리고 속상하고 눈물짓는 일이 많다. 그런 일들을 겪다 보면 때로는 무딘 감정으로 버티기도 하고, 폭발하기도 하고, 절망감에 쓰러지기도 한다. 나는 아동부터 어르신까지 마음이 아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부모와 분리가 시작되는 시기로 이때 아동기 때 느껴보지 못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 혼돈과 어려움이 때로는 본인도 감당하기 힘들어 안 좋은 일에 휘말리기도 하고 가족 내 문제가 되어 교육이나 상담을 받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 시기에 많은 고민과 나만의 아픔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용은 다르지만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팠던 나의 경험들은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면서 엄청난 보물창고가 되었다. 빨리 지나가고 싶고 절망 그 자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 나와 비슷하거나 아픈 사람 만나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보물창고가 된 것이다.

아픔을 얘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모든 과정이 보람 있지만, 특히 청소년들은 그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며 기쁨도 주지만, 내가 준 노력 이상으로 되돌려 주어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주로 자유의지에 의해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법적 절차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아 진행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이고, 진행이 시작되어도 처음 세운 계획대로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문제라도 그 원인과 양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치스럽고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빨리 교육이 끝나길 바라고, 이 기억을 상기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패스트푸드점에서 지인과 간단히 요기하던 그때, 멀리서 학생 두 명이 와서 일부러 인사를 하고 갔다. 그중 한 명은 내게 교육을 받은 학생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먼저 알아보지 않았는데도,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처음엔 학교생활이 힘들던 학생이 친구와 패스트푸드점에 왔다는 것에 안심했고, 내게 와서 인사했다는 것에,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기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염없이 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덤덤히 걷다가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고 그 아이가 생각났다. 분명히 비는 아까와 똑같이 내리고 있건만 내 마음에는 폭풍이 몰아치며 폭우가 쏟아지고 나를 압도해버렸다. 자신이 가장 힘들고 수치스럽고 감추고 싶던 그 시간을 함께 보낸 내게 일부러 와서 인사를 하고 간 그 아이의 마음의 깊이를 비로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도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같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간 것이다. 그 순간 그 폭풍은 내 마음에서 머리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 눈물로 터져 버렸다. 내 작은 노력과 관심에 그 아이는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큰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준 것이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수습해야 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아픔이 나의 보물이 되어 아이들에게 주었을 때 그 이상의 사랑으로 돌려받은 기억들은 지치고 힘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삶의 일상이 수수께끼처럼 의미가 풀어질 때 나는 다시 태어나는 생명을 얻는다. 아픔을 쓰자! 내 아픔을 사용하여 상대와 함께 하면, 나는 더 큰 사랑을 받는 이 놀라운 기적은 우리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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