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북대 교수

종종 달 떠 있는 그림에 손가락이 그려지는 것을 본다. 그 그림에는 달이 뜨고 손가락은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무릇 사람들에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한다. 논제의 핵심을 보라는 일갈이라고 한다. 종종 우리는 커다란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을 비춰 볼 때가 있다. 거울이 아니더라도, 상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거나 전철을 기다리다 비춰진 자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눈에 비친 많은 상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부분을 발견한다. 누구에게 무엇인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감추려 한다.

보인다는 것 본다는 것이 참 불편할 때가 있다. 물론 보고 싶지 않으면 외면하면 된다. 보이고 싶지 않으면 비춰지지 않게 숨어버리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면 질끈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런데 외면을 해도, 보이지 않게 숨어버려도, 눈을 감아버려도 보이는 것이 있다. 그 보이는 것은 깨어질 수 없고 없애버릴 수 없는 것이 마음의 거울이다. 이 거울로 인해 많은 괴로움이 존재한다. 

세상에 욕심 없는 존재는 없다. 욕심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 단어가 분명하게 해석이 갈리는 것은 마음의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으로부터다. 해석은 마음의 거울이 어떤 형태와 빛깔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같은 것을 비춰보더라도 다 다르게 이뤄진다. 참으로 어려운 화두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거울을 갖고 그 거울에 비춰진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시대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혼란의 거울을 만들어 낸다. 그 대부분의 소리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언론매체의 아우성이다. 그 소리들은 저마다 암울한 의도를 내포하고 그저 세상을 바라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스며든다. 그러한 소리는 정치적인 의도와 권력자의 의지대로 조작되고 편향되는 의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영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찌그러지고 삐뚤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 거울은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평평할 수가 없다.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1982년도 작품이라는 '절규'의 영상이 떠오른다. 어느 한 순간에 작자가 느꼈던 불안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그림 속의 사람이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림 속 사람이 자연의 순간적인 비명을 듣는 것이라 한다. 신기한 것은 그 그림에 나타나는 존재들은 다 굴곡져 있다는 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듣기 힘든 소리,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소리가 사람의 비명이든 자연의 비명이든 작가의 마음 속 미명이든 그 소리는 처절하다. 어쩌면 이렇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비쳐지는 양심의 거울조자 굴곡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일 게다.

세상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린다. 세상의 모든 상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인다. 세상의 소리가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고요한 산자락을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나 새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어느 때 들어도 상쾌한 맑음을 가져다준다. 대개 시끄러운 소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악다구니, 전쟁 속에 터지는 비명, 총소리,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다. 수 없이 만들어지는 언론과 방송매체의 목소리들! 이 모든 것들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굴곡진 거울이다. 그런 세계에 존재하는 우리는 굴곡진 거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의 거울도 온전히 세상을 바라다 볼 수는 없을지 모른다. 시끄러운 세상이다. 아니, 한 순간도 조용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더 내기 위해 질러대는 비명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댄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있다. 어떤 이는 손가락의 주인공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어떤 이는 펼쳐진 손가락을 보고, 어떤 이는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본다. 모두가 보이는 것들이 진실이라 믿는다. 따지고 보면 누구 하나 틀린 말을 하는 이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이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굴곡진 세상의 소리에 굴곡진 소리가 굴곡지지 않은 소리로 들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달이 떠 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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