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이 골짝 저 골짝 이야기를 싣고 모여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그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강물은 한결같은데 감쪽같이 이름이 사라졌다. ‘동진강!’ 본래의 이름 대신 어느 틈에 ‘미호천’이란 명칭으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도둑맞은 역사가 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한국의 국호를 ‘조선’이라 칭하고 한일병합 조서를 공포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들은 입맛대로 우리나라를 요리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세월이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빼앗긴 국권과 함께 이름을 잃은 동진강은 시나브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올해로 광복 77주년을 맞는다. 이제 잃어버린, 잊고 있던 것들을 속속들이 되찾아 민족의 맥을 이어가야 할 때다.

예로부터 우리는 산과 물줄기의 이름은 물론, 그 흐름과 정기를 신성시 해 왔다. 한민족의 강인한 정신과 내재 된 힘의 원천이 그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찌감치 그걸 안 일본은 서기 어린 우리의 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정기를 끊었다. 거북구(龜)자가 들어간 상서로운 지명은 아홉구(九)자로 바뀌는 등 많은 마을과 산, 강의 이름이 슬그머니 달리 표기돼 왔다.

동진강도 그랬다. 동진강은 중원문화의 수맥으로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일본은 그 이름을 ‘하천명칭통일’이란 미명 아래 미호천으로 격하시켰다. 1882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전도’ ‘조선내란지도’를 보면 분명 ‘동진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1872년 연기현 지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진강의 근원은 셋으로, 진천 두타산(초평천)과 청주 적현(무심천), 그리고 전의현(조천)에서 나와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두 강이 합류하는 곳이 연기군 합강리이다, 현재 강외면, 강내, 강서 등의 지명도 동진강의 존재를 증명하는 셈이다.

1823년 ‘해동역사’에서도 동진강은 망이산으로부터 진천현을 지나 연기현에 이르러 금강으로 들어간다 했다. ‘대동지지’와 ‘증보문헌비고’에서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우리는 역사적으로 분명한 것도 송두리째 빼앗겼고, 아직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선생의 말씀이 광복 77주년 아침을 울린다. 그동안 잃어버린, 잊고 있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일성이다. 그 일환이 동진강 본래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그 중심에 ‘운초문화재단’이 있다. 한 민간재단으로부터 비롯된 역사의식이 푸릉푸릉 물결을 탄다.

川으로 격하된 것을 다시 江으로 승격시켜야 함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하여 충청북도에서는 ‘미호강 프로젝트’ 추진을 공포했고 ‘미호강’ 명칭변경을 마쳤다. 좀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얼핏 생각하면, 미호천에서 미호강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몰랐을 때의 일이다.

미호천은 일제에 의해 생긴 이름일 뿐, 본래의 이름은 동진강이었음이 각종 문헌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를 되찾는 것이 역사의 복원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버리고 새 이름을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미호강(美湖江)이라는 명칭을 보면, 호수(湖)와 강(江) 두 의미가 중첩된 단어로, 문법에도 어긋난다. 마치 역전(前)앞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호천, 그 잔상을 버리고 미호강이 아닌, 동진강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