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동네를 산책하다가 진풍경을 봤다.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주로 걷거나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노인층을 많이 보는 편인데 이날은 노인에게 에워 쌓인 네쌍둥이를 보았다.

아이들은 돌쟁이쯤으로 보였다. 웨건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를 만난 듯 모여들었다. 지나가던 나조차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기웃거렸다.

물론 대단한 구경거리이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네쌍둥이를 낳은 부모는 애국자 중에 대단한 애국자요 상이라도 내려야 마땅하다. 남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가정을 엮었으니 만인의 본보기가 되고도 남음 직하다.

사람이 많아지자 아이 엄마와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 엄마는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 마구 만지거나 웅성거리니 놀라 칭얼거렸다.

노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디 아기 보기가 흔한가. 더구나 한꺼번에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았으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하지만 바이러스의 대유행 시대를 살고 있으니 거리에서 만난 누군가가 몸에 함부로 손을 대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아기엄마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꺼번에 여러 아이를 키우느라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남의 이목을 끈다는 이유로 산책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니 이 상황이 딱했다.

옛사람들은 삶의 터를 정할 때 아이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마을을 낙점했다. 잘되는 집안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다산은 곧 축복으로 어어졌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저 먹을 것은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었으며 농경문화의 시대에 사람은 곧 노동력이었다.

1925년도 우리나라 출산율은 6.59였다. 베이비붐 시대를 거치면서 인구 증가율이 연 3%에 이르게 되자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며 인구증가 억제정책을 썼다.

1960년대 들어 시작한 산아제한정책은 가족계획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운동이 되었다. 자식 많은 집은 부끄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도 불과 40년을 넘기지 못하고 오히려 적극적인 출산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때의 출산율은 이미 1.57로 떨어진 상태로 인구정책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2005년 1.08명으로 떨어진 출산율은 소폭의 변동을 보이다가 현재 0.84명으로까지 추락했다. 장수의 시대가 되어 노인은 많아지고 젊은이가 자식 낳기를 기피 하니 우리 사회는 인구절벽의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저출산 대책을 잘도 이용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충청북도 도지사 후보들도 출산수당이나 육아수당을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도지사 당선자는 취임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육아수당 100만 원 지급 공약을 파기했다. 출산수당도 절반만 주는 것으로 변경했다. 애초 예산 확보가 불가능할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시·군과 사전 협의도 없이 오로지 당선만을 위해 도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부모 급여라는 정책까지 들고나왔다. 돈으로 결혼과 자녀의 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단다.

자녀는 사랑으로 크는 나무이다. 부모는 그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 나무가 잘 자라도록 지탱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시대와 함께 변할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