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세계 빅 쓰리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네 번째 내한공연이 6월 마지막 주말에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우리 나이로 여든셋 노장 플라시도 도밍고의 공연은 내 생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공연에는 도밍고가 우리의 테너 가수 트바로티 김호중에게 자필 편지로 초대장을 보내서 함께 협연을 하는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공연이었다. 단 2분 만에 6500 전석이 매진되었다니 도밍고의 저력과 김호중 가수의 팬덤 아리스의 위력이 입증된 셈이었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오페라의 제왕’ ‘음악계의 진정한 르네상스맨’이 그를 칭하는 찬사이다.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빅 쓰리 테너로 불린다. 스페인 출생의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데뷔해서 20세에 테너로 전향을 했다. 테너로서 누리던 명예와 영광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았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테너에서 다시 바리톤으로 음역대를 바꿔가면서 오페라의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내는 노력파였다. 그의 음반만 100여개가 넘었고 그중 여덟 개의 음반이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도전과 정열이 넘치는 예술혼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여든셋의 나이에도 내한공연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부산 해운대의 스윗한 밤바람에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이 어둑어둑 해가 지면서 막이 오른다. 프라임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프란체스코 이빈 치암파가 나부코의 서곡을 웅장하게 연주했다. 해운대에서 한여름 밤에 클래식 연주를 듣다니 꿈만 같았다. 거장 도밍고가 건장한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첫 순서로 안드레아 세니에의 ‘조국의 적’을 열창했다. 여든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거장의 포스, 세계적인 오페라의 제왕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어서 메트로 폴리탄의 뮤즈라고 불리우는 게스트 제니퍼 라울리의 베르디에 일트로 바토레 1막 ‘달이 밝게 비추던 평화로운 밤에’가 연주 되었다.

드디어 아리스들이 내심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호중의 순서가 되자 객석은 환호와 탄성이 쏟아졌다. 첫 곡으로 그 어렵다는 람베르무어의 루치아 ‘내조상의 무덤이여’를 거뜬히 멋지게 열창했다.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노래하고 있는 듯 들렸다. 역시 김호중은 트롯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본업은 클래식이고 클래식을 할 때 멋지고 김호중다웠다. 2부에서는 김호중의 수식어와도 같은 곡 ‘공주는 잠못이루고’ 네순도르마의 빈체로! 가 해운대의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도밍고와 김호중이 듀엣으로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를 때에는 감동적이었다, 도밍고는 우리말이 어눌했지만 두 사람의 화음이 절묘했다. 마이웨이를 부를 때에는 밤하늘에 팡파르가 터졌고 객석에서는 박수를 치면서 찬사를 보냈다. 공연은 절정으로 향했고 도밍고와 라울리, 김호중 셋이서 이태리 가곡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열창을 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따라서 떼창을 했다. 도밍고도 라울리도 객석의 반응에 감동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물망초를 객석에서 떼창하는 나라는 이태리와 한국밖에 없었다면서 도밍고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도 객석에서는 “김호중! 김호중!”을 외치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밍고의 공연에서 김호중을 외치고 있었던 결례마저도 아름다웠던 밤이었다.

감성이 통하는 사랑하는 아리스들과의 행복했던 동행 부산 나들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준비해온 와인으로 함께 축배를 들었다.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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