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이장희 충북세정포럼 대표·충북대 명예교수

최근 정치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이냐 하는 세간의 화제도 있고, 국회의 입법 활동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마주오는 열차를 보는듯한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정당은 영국에서 1678년에 탄생한 토리당, 휘그당이 시작인데 이들은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불량배나 도둑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즉, 내 의견을 관철 시키기 위한 출발 때부터의 싸움꾼의 모임이었다고 한다.

정당이 맨날 싸우는 이유는 싸우려고 만든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매일매일의 뉴스에서 서로 싸우고 헐뜯는 소식만 들리고 있는데 정당정치는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싸워 가느냐 하는 전략이 우월한 정치집단이 승리하게 된다. 즉, 싸움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이 정당이다.

민주주의란 한 공동체 내에서 공적 결정을 만드는 틀이고, 그 민주주의에 내용을 불어 넣고 만드는 것이 복수의 정당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당이 있음으로 인해서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보통 사람의 의견은 묻혀버리게 될 뿐이다.

소수의 목소리만 반영된 법안이나 정책은 국민의 뜻에 기반한 의사결정 구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 의견 반영과 같은 맥락으로 국회 내에서 상반된 이견을 어떻게 수렴해 나아가야 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많은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듯이 상대방 의견을 포용하고 협력해 나아가려는 자세는 ‘다수의 횡표’를 어느 정도 막아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우리의 작금의 사태는 수적인 우세나 일방적인 특정세력의 목소리에 의해 쓰나미처럼 휩쓸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는 법안이 통과될 수밖에 없는 다수결의 논리가 원칙이지만, ‘싸우지 마라’가 아니라 ‘잘 싸워라’는 주문을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남의 의견을 묵살하고 반대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정치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결과일 뿐이다. 결국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논쟁이 술안주감으로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의원 정수를 100명 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식 대대로 부자세습을 시키려는 집착, 의원연금 받으려는 꼼수법안, 검찰개혁의 외침을 훼손시키는 검수완박법, 기묘한 게리맨더링식 비례의석 나눠먹기로 짜고 치다 패당망신당하는 정당, 내로남불을 스스로 즐기는 헌법기관 기능 남용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헤아려야 한다.

땜방용 사보임을 밥 먹듯이 해가며 날치기 통과를 하고 예산안 결산안 통과의 법정시한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되고 본인들의 범법은 방탄용으로 국회를 이용함으로 국회 무용론이 등장한 것이다.

국민 의견은 무시한채 ‘스스로 은퇴선언’하고 때가 되면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재등장하는 고물 사기극에 국민들이 놀아나기도 했고 또 그들이 대통령도 해먹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을 추종하는 집단 놀음이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그야말로 정치이다. 그러기에 정치에 환멸은 느끼는 국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그 권력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민생경제를 외치는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 해준 것이 진정으로 무엇이란 말인가 ?

늪으로 빠져드는 듯한 대한민국 대변혁의 계기로 이젠 정치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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