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길쭉한 표면에 얼룩얼룩한 점이 늘어나 있다.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곱지 않다. 촉감 또한 무르다. 껍질을 보니 순간 먹고 싶은 마음이 가신다. 식물의 갈변은 폴리페놀이라는 유기화합물의 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과육의 단맛은 보기와 다르게 최고이다. 그래선가 하루살이가 과일 언저리를 날아다닌다. 머지않아 바나나는 온통 갈색으로 변하리라.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 어디 바나나뿐이랴. 하늘정원에는 바람결에 마른 꽃송이가 버석거린다. 꽃 앞에 바투 앉아 들여다보니 참으로 신비롭다. 잎은 모두 떨어지고 가지 끝에 매달린 갈색의 꽃송이들. 언제 고운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색은 발하고 형태는 그대로 말라 있다. 꽃송이는 칼바람 맞으며 색은 점점 바래지리라. 동토에서 새순이 돋을 때까지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리라. 버석거리는 속울음은 마치 '나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어.'라며 시간의 속성을 뼈저리게 되새김하는 성싶다.

소멸에 이르는 인간의 노년 색이 궁금하다. 아기와 노인의 피부는 확연히 다르다. 아기의 피부는 선홍빛으로 태어나 성장하며 우윳빛으로 뽀얘진다. 반면에 상노인의 피부는 날이 갈수록 늘어지고, 얼굴은 자디잔 주름살에 검버섯까지 돋아 누레진다. 우주 만물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색도 색이지만, 수국처럼 형태가 변하지 않고 곱게 늙느냐, 목련처럼 추레하게 흩어지느냐이다. 꽃의 삶을 살지 않아 그 속내는 잘 모르나, 저들의 노년의 모습은 시간에 따른 순리라는 걸 깨우친다.

이 모든 걸 신이 내린 음료가 대변하지 싶다. 가을날 수확한 포도는 무수한 여정을 거쳐 인간의 식탁 위에 오른다. 와인은 보통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두 가지로 알고 있다. 둘 다 오래 묵히면 하나의 색인 갈색으로 응축된단다. 어두운 통 속에서 많은 과정을 거쳤으리라. 인간이 만약 백수를 한다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등 무수한 감정의 산을 넘고 넘었으리라. 모든 만물은 영생불멸을 원하고 원하나, 삶의 곁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노을이 그렇고 꽃이 그렇다. 시시각각 아름다운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년의 과정을 거쳐 덧없이 사라지는 데 우리만 보지 못할 뿐이다.

갈색의 종착역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만물은 세월의 빛에 발하여 색의 원점인 흰색으로 돌아갈 것 같다. 인간은 생을 다하면 한 줌의 재로 돌아가지 않던가. 좋아하는 꽃문살이나 목어도 오래 묵으면 무채색으로 발한다. 나는 엷은 갈색의 나무색이 좋아 그 곁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런 갈색이든 흰색이든 바래진 겉모습이 무엇이 중요하랴. 노년에 달하기까지 대상이 품은 고유한 결이 중요하지 싶다. 내면의 결은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따라 바뀌고, 그 형상은 온몸에 조각한 것처럼 새겨지기 때문이다.

눈앞에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손사래를 쳐 내몬다. 이어 갈변한 바나나를 들고 껍질을 벗긴다. 속살도 거무스름하다. 과육을 한입 베어 물며 신통치 않은 사유 속에서 빠져나온다. 뇌리에서 툭 불거진 음성, 손녀가 '할머니'를 부른다. 사랑스러운 음성을 거부할 수가 없다. 이미 난 호칭으로 노년의 길에 서 있다. 현재 나의 입안은 과즙으로 달다. 노년의 색이 달고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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