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창호 한전 충북본부 전략경영부장   

길가 어디서든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가끔 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곤 하는데 같은 계절이라도 날마다 기온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조금은 덥게 느껴지던 지난주 화창한 오후, 커피 한잔이 생각나서 인근 카페에 들렀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한기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 위 냉방장치 두 대가 모두 가동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언론에 수차례 등장했던 유럽 각국의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 기사들이 떠올랐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유럽에서는 겨울에도 강력한 에너지 정책을 예고했다. 일반인들도 치솟는 전기요금과 순환정전의 우려로 휴대용 버너를 사고 캠핑용 침낭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유럽은 올해 내내 에너지 위기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0%가 넘는 국내에선 이런 위기를 체감 못하는 것 같다. 올해 중반까지 급등한 원자재 가격이 전기요금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된 때와 비교하면 유가는 1.5배, 유연탄은 6배, LNG는 4배 가까이 올라 세계각국에서는 작년부터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초까지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하다가 지난 4월부터 소폭 인상됐다. 하지만 이미 급등한 연료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요금 인상에도 올해 한전 적자가 30조원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여전하다. 

당장은 이러한 에너지난과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 여건을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탄소중립을 실현해 기후위기를 슬기롭게 넘겨야 하기 위해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 따르면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르면 지구 생명을 좌우할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도 가량 상승했기 때문에 인류에겐 단 0.5도의 여유만이 남아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재앙 수준의 가뭄, 홍수, 산불 등 온난화 현상으로 몸살을 겪고 있어 미래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탄소중립 정책을 이행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생산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은 탄소중립을 막는 에너지 다소비, 저효율 소비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소비자의 합리적 전력사용을 촉진하고 전력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의 가격 시그널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과 기업의 에너지 절약을 촉진하고, 에너지 효율 부문에 대한 투자를 원활하게 해 탄소중립을 위한 선순환구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는 정부에서도 강도높은 에너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어 유난히 길고 추운 날들이 예상된다. 우리가 감수하는 불편함이 미래세대를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더 이상 저렴한 요금으로 최고품질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시장을 반영한 전기요금을 바탕으로 에너지절약과 전력사업의 효율화에 집중한다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날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가올 11월에는 카페를 방문할 때 매장 안이 나른할 정도로 너무 따뜻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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