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전 여담에 곡돌사신(曲突徙薪)이란 말이 있다. 굽을 곡(曲)), 굴뚝 돌(突)) 옮길 사(徙), 땔나무 신(薪))자를 쓴다. '굴뚝을 구부러지게 만들고 땔나무를 옮겨 화재를 예방한다는 뜻이다. 미리미리 적절한 조치를 취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라는 말이다.

한서 '곽광전편'(藿光傳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길 가던 나그네가 우연히 한 집을 보니 굴뚝이 곧게 세워져 있고, 굴뚝 옆에는 땔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굴뚝이 아궁이와 일직선이 돼 있으면 불길이 곧장 굴뚝으로 치솟아 위험하다. 게다가 땔감까지 그 옆에 쌓여 있으니 불이 나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래서 집 주인에게 굴뚝을 구부리게 하고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집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칠 안돼 그 집에 불이 났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불을 꺼 집 주인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에 보답을 하려고 집 주인은 술상을 차려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다.

이때 한 이웃이 이렇게 말했다. "굴뚝을 구부리고 땔감을 옮기라고 했던 나그네에겐 은택이 가지 못하고, 머리 그슬리고 이마를 데며 불을 끈 사람들만 상객이 됐네요." 맨 처음 충고를 해 준 사람은 잊혀진지 오래라 상을 못 받고, 불이 난 뒤 불을 끈 사람에게만 대접을 하느냐는 뜻이다. 집 주인은 그제야 잘못을 깨닫고 나그네를 불렀다고 한다.

불에 머리를 태우고 이마를 그을린다는 '추두난액'이라는 성어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어려운 일을 당해 몹시 애를 쓴다는 뜻이다.

최근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2명의 광부가 지난 4일 밤 무사히 생환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221시간 만의 기적이다.

‘10월의 비극’이 아니라 ‘10월의 기적’이라 고쳐 부를 수 있다. 두 사람은 당국이 갱도 내 막혀 있던 최종 진입로를 확보함에 따라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2명의 광부는 구조대의 도움으로 갱도 밖으로 걸어서 나왔다.

암석 덩어리로 뒤덮여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3편 본선 갱도'(평면도 상 상단 갱도) 마지막 폐쇄 지점 약 30m 구간이 예상과 다르게 20여m가 뚫린 상태였다고 구조 당국은 전했다. 발견 당시 두 사람은 폐갱도 내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위에 비닐을 치고,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견뎌냈다.

두 사람은 갱도 내에서 구조 당국의 발파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갖고 서로 의지하면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사고 당일 작업에 투입할 때 챙겨간 커피 믹스와 물을 먹으며 버텼으며, 다 먹고 난 뒤에는 갱도 안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신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

구조된 두 광부는 두 발로 걸어서 갱도 밖으로 나오는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경북 봉화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제1 수직 갱도에서 펄(토사) 약 900t(업체 측 추산)이 수직 아래로 쏟아지며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작업반장 등 2명이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서 고립됐었다. 이 광산에서는 지난 8월 29일에도 같은 수직갱도 내 다른 지점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기도 했다.

두 광부는 구조를 기다릴 때까지 가장 중요한 삶에 대한 의지도 강했기 때문이다. 매몰된지 하루하루 생존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생존 본능과 함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기적의 원동력이 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참사가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사태 속에서 아연 채굴광산에서는 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탈없이 기적을 일궈냈다. 한쪽에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해 300여명의 인명피해를 보게 해 국민들에게 소금을 뿌렸다.

반대로 경북 봉화군에서는 안전대책을 쏟아내며 기적을 일궈내 대조를 이뤘다. 시계침을 되돌리고 싶다. 막을 수 있는 일이었으나 무책임으로 발생해 '곡돌사신'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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