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모든 대형사건과 사고는 훗날 역사에 기록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반성하고 개선한다. 반성은 책임에서 나온다. 대형사건·사고 책임자는 법 제도의 심판 전에 이제까지 배워온 기초질서, 사회제도, 일반상식 같은 포괄적 경험을 통한 정치적 판단을 먼저 받는다. 

정치적 판단 주체는 권력자나 해당 기관장이 아니다. 오직 국민만이 여론으로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국민 상식에 맞춰 보면 이미 정치적 판단은 끝난 상황이다. 대상자가 정치적 판단에 따르지 않을 때 정치 성향과 덜 밀접한 일반 국민까지 분노한다. 이 같은 상황이 오면 국민은 국정 운영 책임자의 판단을 지켜보고 요구하게 된다. 국민은 이태원 참사에 많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 특히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제도로 경찰 권력을 이동시키는 단계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는 매우 심각한 치안 공백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자치경찰은 검찰에서 수사권을 가져올 때 발생하는 '경찰 권력 비대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다. 자치경찰제는 경찰업무를 국가경찰과 지방경찰 사무로 나눈다. 자치경찰은 광역시장과 도지사 산하에 합의제로 자치경찰위원회를 두도록 되어있다. 자치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이 아닌 자치경찰위원회에 보고한다. 시도지사와 자치경찰위원회는 경정 이하 자치경찰의 전보와 경감 이하의 임용권을 지닌다. 경찰 관련법에서 자치경찰 사무는 관할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시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 경범죄, 가정폭력, 학교폭력, 교통 범죄 수사, 관할지역 내 주민 생활 안전 사무 등을 하는 것으로 제도화했다. 

자치경찰 사무를 주로 맡는 일선 경찰서 교통, 여성청소년 등 생활 안전 소속 부서 경찰관은 자치경찰공무원으로 신분도 바뀌었다. 이 때문에 자치경찰은 재난긴급구조지원업무도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치경찰은 현재 경찰청소속 국가직 공무원이다. 자치경찰소속 경찰은 부서장과 자치경찰위원회 양쪽에 모두 보고하기 때문에 피로감만 높아진다. 이중 지휘체계인 상황이다. 

자치경찰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다. 무늬만 있을 뿐 실행 능력이 부족하다. 중요한 점은 생활 안전의 팔다리 역할을 하는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 경찰이 112상황실 소속인 국가경찰로 남아있다는 부분이다. 자치경찰은 독자 조직이나 현장 인력도 없는 허울뿐이다. 그렇기에 112에 연관된 생활 안전 업무는 국가경찰 도움 없이 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자치경찰위원회를 국정 100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정했다. 중요한 국정과제라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가경찰은 줄다리기를 멈추고 자치경찰 본연의 업무가 가능하도록 지구대 등 국가경찰의 권한을 이양해 국민 안전을 위한 정교한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와 아울러 개개인과 업무특성에 맞게 맞춤형 시스템을 갖춘 민간경비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복잡 다양한 현재와 미래의 세계에는 맞춤형 민간경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경비와 함께하는 치안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경찰 더 나아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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