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얼마 전 이채익 대한민국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교통유도경비업무’를 추가한 경비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웃 일본은 이미 50년 전부터 교통유도경비업무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안전 관련 제도는 경제력에 비추어 볼 때 아직 미흡하다. 위험은 가깝고, 안전은 멀다는 푸념도 나온다. 분노할 지경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책임 주최 역시 찾기 어렵다. 서로 네 탓만 하기 때문이다.

개인 보호 성향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사회는 공적 영역에서 안전을 책임지기 힘들다. 공적 영역의 안전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기에 높은 수준을 기대할 수 없다. 각종 옵션을 추가한 맞춤형 안전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경비가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이채익 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교통유도경비업무는 교통사고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도로 길이는 고속도로, 일반국도, 특별·광역시도, 지방도, 시·군 도로를 합쳐 11만km를 넘었다.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00만 대 이상이다. 도로 폭은 넓어지고, 길이도 길어졌다. 도로 신규공사와 보수공사 역시 늘었다. 여기에 도로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기, 통신, 배수관 등은 교통환경을 더욱 혼잡하게 만든다. 이렇게 비대해진 교통환경에서 경찰을 비롯한 정부의 교통관리만으론 촘촘하게 관리할 수 없다. 교통을 중점 담당하던 의경도 2023년 6월부터 완전히 사라진다. 엎친데 덮친 상황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비전문가가 행사장과 도로 공사 현장 등에서 교통유도업무를 하고 있다. 이 같은 비전문가의 차량 유도방식 및 차량 유도계획은 교통사고와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일반 도로 공사 현장은 매일 사고위험을 안고 작업한다. 예를 들어 왕복 2차선 도로에서 한 차선을 막은 채 굴삭기로 작업할 때 작업복을 착용한 사람이 경광봉 두 개를 한 개씩 양손에 들고 교통유도업무를 한다. 경광봉 하나는 좌측에서 오는 차량을 통제하는 용이고, 다른 하나는 우측에서 오는 차량을 통제하는 용이다.

그러나 멀리서 다가오는 운전자는 교통유도를 하는 사람이 어떤 차량을 정지하거나 진입하게 유도하는지 매우 가까이 가서야 알 수 있다. 무자격 교통유도원의 신호를 받고 움직이는 운전자는 굴삭기의 작업 반경을 피하지 못해 부딪히는 사고에 두려움을 느낀다. 현재는 운전자보다 작업자 중심으로 교통유도를 한다. 무자격교통유도원은 사고를 일으켜도 관계없다는 식이다. 정부가 교통유도경비업무를 도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교통유도경비업무를 도입해 전문 교육을 수료한 뒤 자격을 취득한 교통유도경비원을 배치하도록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에서 수신호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은 경찰공무원, 경찰공무원을 보조하는 사람, 군의 헌병 등이다. 자격을 가진 사람이 수신호를 해야만 수신호에 따라 발생한 사고에서 책임자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눈에 잘 보이는 형광 색깔 복장을 착용한 무자격 교통유도원이 업무를 한다. 공사현장노무자, 해병전우회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아르바이트 요원에 불과하다. 간혹 꼼수로 업체가 모범운전자를 고용해 수신호를 하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 택시운전사 출신인 모범운전자는 관할 경찰서에서 인정하는 배치장소만 수신호 업무를 할 수 있다. 국가는 이들의 수신호로 발생한 피해를 보호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휴가철, 행사장, 공사현장, 출퇴근 등 과거 수십 년간 많은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더는 책상머리 관료화된 교통 흐름 관리로 국민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교통 흐름을 시대에 맞게 파악해 보다 효과적이고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 원활한 교통 흐름을 돕는 교통유도경비업무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교통유도경비업무 도입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폭넓고 다양해진 도로와 차량의 정확한 유도를 위한 ‘교통유도경비업무’ 도입은 지금도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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