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여행이 시작된 날, 프랑스 출신의 작가 아니 에르노(82)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수십 년 전의 작품으로 말이다. 한림원은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그의 용기와 냉철한 예리함"을 노벨 문학상 선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고 했다. 그녀가 밝힌 대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말을 더듬으며 자칫 포르노 같은 에르노의 소설을 노벨문학상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생각해, 일단은 놀라웠다.

1991년 출간 당시 선정적이고 사실적인 내면의 고백으로 문제작이었다는 ‘단순한 열정’에 대해 소형 버스 안에서 책을 읽은 이들과 책의 요약본을 본 사람들, 그리고 그들 간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 있는 소재로 고속도로 어디쯤 한참을 지나고 있었다.

1992년 제1회 천안시 주부 백일장으로 수필부문 장원을 하여 천안문학 13집을 통해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해 처음으로 천안문학 후원회가 결성되어 지역 경제인들이 문학지 발간을 위한 비용을 후원하였고, 문인들을 초빙하여 각종 행사나 식사, 여행 등을 같이 하면서 더욱 끈끈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해주었다. 여리고, 촌스러웠던 필자는 천안문학회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를 배워 나갔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남편보다는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부딪는 시간이 더 길었던 고된 시집살이의 경험만이 수필의 단골 주제였다. 내가 디뎠던 시골 풍경 말고는 글의 소재가 없었던 필자에게, 함께 활동하는 선생님들의 작품은 타인의 삶을 엿보는 인생 공부가 되었다. 투박한 글솜씨로 매번 책을 낼 때마다 편집자들에게 수정 요청이 오거나 오탈자, 비문 등에 대해 정정 요청이 올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떠나지 않았다. ‘밥보다 고추장이 많다’는 표현처럼, 원고지에 그어진 빨간펜 수정을 감내하며 그 어려운 자리를 버텨냈다.

통영에 도착하여 박경리 문학관을 시작으로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 미술관 등을 찾아다니며 통영, 거제 일원을 누비는 일은, 수채화처럼 맑은 하늘만큼, 그 아래 하늘보다 파랗게 누운 바다만큼이나 싱그러운 재미였다. 그 시절 통영의 중, 고등학교에서 이분들에게 시와 그림과 음악을 배운 세대가 부러웠다. 미술관 옆 ‘봄날의 책방’에 잠깐 들러 아니 에르노의 노벨상 수상 작품을 찾았으나 누군가 먼저 가져갔다. 다른 책 ‘집착’을 들고나오는 것으로도 행복한 소비였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틈틈이 읽었다. 다행인 것은 단편이기도 하고 그 여자의 연애가 내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동피랑, 서피랑을 오르는데 원로 백선생님의 허리가 바짝 굽어진다. 30대 초반에 보았던 백선생님은 잘나가는 수필가였고,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 쉰 중반의 멋진 중년 남자였다.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데이트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겼는데,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구부러진 허리를 감당하지 못한다. 동피랑 고샅을 오르며 바짝 다가가 선생님을 부축했다. 연애감정이 살아나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세월이 야속했다.

갓 서른의 여리고 수줍었던 시골뜨기는, 염색하지 않은 백발의 머리를 이고 30여 년 함께 한, 문학의 대 선배님들 사이에 끼어, 스스럼없이 나이든 여인의 평화를 맛본다. 팔순을 넘긴 ’아니 에르노‘는 아직도 연애감정 때문에 고통스럽고 치열할까?. 작고 여린 것들의 나중,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던가?. 문학인들과의 여행은, 여행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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