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박기대 건양대 교수

저무는 하늘 속으로 가라앉는 노을처럼 2022년도 이제 안녕을 고하려 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 아쉬움을 유추해내며 내 자신을 향하여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았을 때, 내 인생의 비망록에는 어떠한 사연들이 쓰여 있을까? 조용히 반문해 본다. 아마도 어느 해보다 더 지독했던 외로움이 그려져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삶이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어울림은 정해진 목적을 내재하고 있는 사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툭 터놓고 인간적인 향기를 발산하는 은은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어울림이 마치 고전적인 행사인 양 차 한잔 앞에 두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며, 해거름녘 골목어귀 포장마차에 앉아서 인생의 넋두리를 떠는 것도 아니 것만, 지인들이나 가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인간적인 교분을 만들지 못하고 스스로 외롭다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흔히 말하기를 외로움에는 세 가지 종류의 외로움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일시적인 외로움이고, 또 하나는 이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은 예견된 상황적인 외로움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심각할 정도로 습관적이면서 만성적인 외로움이다.

심리학자들은 일시적인 외로움과 상황적인 외로움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지극히 정상적이며 건강한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만성적인 외로움은 그것을 겪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극복할 방법이 없는 외로움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관계, 다시 말해서 친구나 가족들 그리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자기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단정 짓는데,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을 대하는 타인들의 인정과 그들 자신이 더 많은 것들을 가져야 한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큼 항상 불안에 가득 찼던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Lev Tolstoi)의 자전적 이야기가 떠오른다. 톨스토이의 아내는 좋은 성품을 가진 미인이었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재능이 충만한 착한 아이들이었고, 또한 재산도 넉넉했으며 톨스토이 자신은 뛰어난 재주와 건강한 체력을 가졌음을 항상 자부하였다. 아울러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존경과 칭찬을 받으며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떨쳐 있음을 자랑도 하였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세상에 톨스토이만큼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역설적으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몹시 슬프고 외롭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억제하고 참지 않으면 안되었음을 초연하게 회고하였다.

우리는 가끔씩 ‘왜 나만 이렇게 외로운가?’라고 푸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당치도 않은 생각일 수가 있다. 오히려 ‘나는 왜 이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나?’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것을 한 번 의심해 보자. 세상에는 우리의 어둔한 두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가장 휼륭한 사람들은 외로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획득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불현듯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그래서 내 인생의 노트인 비망록에서 ‘지독했던 외로움’이라는 말을 2022년도의 겨울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친구와의 이별 앞에서 느꼈던 나의 외로움이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힘을 합쳐서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 속에서 나에게 할당된 지극히 조그마한 몫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나의 외로움에 대한 극복이라는 마음으로 캐럴을 읊조리며 2022년도를 외롭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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