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창] 심완보 충청대 교수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선정된 사자성어는 당대의 세태를 단 네 글자로 축약해 촌철살인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자성어 선정 절차는 관련 학자들로부터 사자성어를 추천받아 교수신문 논설위원, 편집기획위원 등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거쳐 후보를 추리고, 마지막 단계인 설문조사를 한다고 한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이전 정권이 끝나고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연도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니 정권교체기의 시대적 상황을 함축적으로 느낄 수 있어 재미있었다.

김대중 정권이었던 2001년 첫 번째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 암울한 국제 정세, 계약제와 연봉제가 가져온 신분 불안 등으로 선정되었다.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과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철새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노무현 정권이 시작된 2003년은 ‘우왕좌왕(右往左往)’, 이는 정부 출범 이후 정치, 외교, 경제 정책들이 혼란을 빚으며 헤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인 2007년은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인다. 사회 저명인사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등 도덕 불감증과 관련된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8년은 ‘호질기의(護疾忌醫)’,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에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권 마지막 해인 2012년은 ‘거세개탁(擧世皆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 위정자는 물론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파당적 언행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첫해인 2013년은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에 거슬러 행동한다. 정부 출범 이후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모습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으로 인한 마지막 해인 2017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잘못된 것을 타파하고 올바른 것을 추구한다. 새로운 정부가 적폐 청산을 제대로 이루고 올바른 정치로 나아가길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담겼다.

문재인 정권의 실질적 첫해인 2018년은 ‘임중도원(任重道遠)’, 큰일을 맡아서 책임은 막중하고 할 일은 많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구상과 각종 정책을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를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해인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과 도둑이 한패가 된다. 국정을 책임지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되어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시작된 올해 2022년은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를 탓하거나 야당 탄압으로 몰아가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진보,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긍정보다는 부정이 많았던 세월이었다. 긍정의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되는 시절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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