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1월은 고속도로 휴게실에 머문 듯 잠시 편안함을 준다. 방학 계획표처럼 욕심껏 새 설계는 이제 하지 않는다. 실천 가능한 최소한의 일만 정해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정리하며 그래도 목표 하나 세울 수 있는 시간이다.

볼 일이 있어 모처럼 서울행 버스를 탔다. 새해 벽두이다 보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차리면서 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세 군데에서 ‘카톡, 카톡’ 연이어 울린다. 카톡 소리를 무음으로 해 달라는 운전기사의 요청이다. 나도 얼른 휴대폰을 꺼내 소리를 줄였다. 몇 정거장 지나는 사이 어디선가 또다시 카톡하고 정적을 깬다. 새로 탄 승객인지, 기계 작동에 어둑한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방심한 사이 카톡이란 녀석이 비집고 들었다.

기사의 목청이 한층 올라간다. “거참, 카톡 소리 좀 꺼 주시오. 기본 예의 아니에요? 한다. 퍽 짜증이 났나 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접하는 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해가 가면서도 졸지에 승객들이 예의없는 무리로 몰린 기분이 들었다. 뒤의 말은 하지 않았으면 기사의 심경에 공감이 더 컸을 터인데, 가던 그 마음이 슬그머니 돌아선다. 언짢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스쳐 간다.

카톡 소리보다 기사의 목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내리면서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승객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면서 내린다. 고개만 까딱까딱하는 기사의 태도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서울서 내려오는 버스 기사의 경우는 또 다른 모습이다. 내리는 사람에게 일일이 ‘안녕히 가시라’는 말로 정중히 인사를 한다. 승객들이야 고맙다, 수고했다. 한마디면 되지만, 기사는 몇십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겠다 싶으면서도 주고받는 인사가 새해 덕담처럼 들려 발걸음이 가볍다.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한다. 직접 관계가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별일 아닌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하릴없이 말에 대해 골똘해진다. 공기나 햇빛처럼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의 한 분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말’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으로 첫 번째 꼽는 것이 말의 사용이다. 깊이 사고하여 언어로 형상화하는 능력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빼어난 재능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서 무궁한 변화와 발전을 해 오는데 원동력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새삼 신비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이 많은 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일부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소수의 음소를 적절히 결합하여 여러 형태소를 만들고, 이것들을 이리저리 연결하여 무한한 수의 문장을 이룬다’고 했다. 대단한 능력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소통의 매개체이다. 말은 그 속에 숨은 의미까지 읽어 내야 제대로 전달이 된다.

자칫 잘못 감정이 들어가다 보면 본말이 전도되어 말꼬리 잡는 싸움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눈만 뜨면 접하는 텔레비전은 매일 말로 홍수를 이룬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이,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말장난, 말싸움이 판을 친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주춤해진다. 올해는 남에게 흠집을 내기보다 거멀못이 될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목표 하나 세운다. 말에도 색깔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