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 갑질을 견디기 힘들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큰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여러 논의가 열렸고, 많은 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2021년 공동주택 경비원 보호와 구체적인 경비 업무를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일명 경비원 갑질금지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냐고 물을 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지금도 경비원을 향한 갑질 기사는 여전하다. 경비원 처우 개선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서 올해 1월 12일 발표한 '대학교 및 아파트 휴게시설 설치 의무 이행실태 점검 결과'를 보면 10곳 중 4곳은 아직도 휴게시설이 미흡한 상황이다. 경비원 갑질을 막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경비원 갑질 피해 사례는 법 시행 뒤에도 여전히 발생한다. 심지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자료를 보면 '경비원 갑질' 상담 건수는 2021년(1~9월) 293건에서 2022년(1~9월) 553건으로 늘었다. 특히 폭언·폭행 괴롭힘 상담은 2021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5건으로 조사됐다. 경비원 갑질금지법이 갑질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증가한 피해만큼 처벌도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시행령에 폭언·폭행 처벌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법 조항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 기준 지난해 말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는 30만 명에 이른다. 여기서 관리사무소와 청소 미화 인력을 뺀 10만 5800여 명(36%)이 경비원으로 종사 중이다. 또다시 갑질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비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2019년 8월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창문 없는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대학교 및 아파트 청소·경비 근로자의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경비원은 여름엔 푹푹찌는 폭염과 싸우고, 겨울엔 매서운 강추위와 맞선다. 사회적 관심으로 에어컨과 난방 시설이 설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대학교·아파트 휴게시설 279곳을 실태 조사한 결과를 올해 초 발표했다. 점검 결과 279개 사업장 가운데 124곳(44.4%)가 규정을 위반했다. 위반 사유를 보면 난방 설비 미설치, 천장 높이 기준(2.1m) 또는 최소 바닥면적(6㎡) 미준수, 환기시설 미설치·미작동, 식수 미비치, 물품 및 청소용품 보관 등 목적 외 사용 순이다.

2023년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한 몸 뉘기 힘든 곳에서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고, 환기도 안되는 공간에서 물도 마시기 힘든 상황이다. 인류보편적 가지인 인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개선이 시급하다.

잠시 따뜻했던 날씨는 다시 매서운 추위로 돌아섰다. 우리 인생도 변덕 심한 날씨와 같다. 한평생 '희로애락'을 겪으며 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마지막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못하게 내려보면 안된다.

경기 한파로 경비원 구직을 원하는 인원도 다양하다. 전문직부터 젊은 세대까지 아우른다. 이제 경비원은 특정 세대 특정 직업군이 하던 일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경비원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더불어 정부는 관련 법을 사각지대 없이 개정해야 한다. 한 경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출근할 때는 오장육부를 빼서 집에 두고 간다"고 말했다. 이제 가슴 아픈 이야기는 뒤로한 채 앞으로는 경비업이 행복한 직업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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